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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빠져나가기와 목소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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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석준 작성일05-04-16 21:18 조회4,2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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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젼] 빠져나가기와 목소리내기

                                  ** 임석준 [부산경실련 기획위원 /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

   
단골 식당의 음식 맛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 다니는 헬스클럽의 서비스가 나빠지기 시
작하면 어떻게 하는가. 당신 회사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할
까.

1970년 미국의 경제학자 알베르트 허쉬만은 조직, 회사 나아가 국가가 쇠퇴할 때 구성원들은 빠져
나가기, 목소리 내기 혹은 충성하기 중 하나의 처세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빠져나가기는 말 그대로 조직을 탈퇴하여 다른 조직에 가담하는 것이다. 목소리 내기는 못마땅한
조직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충성하기는 조직이 자신의 기대와 달리 움직이더라
도 충성을 바치는 처세를 말한다.

허쉬만에 따르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조직에 대한 신뢰'와 '개인의
능력'이다. 능력이 있고 조직을 신뢰하는 사람은 목소리 내기로 나오고, 능력은 있으되 조직에 대
한 신뢰가 없는 사람은 빠져나가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조직에 대한 신뢰도 능력도 없는 사람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충성하기 반응을 보인다.

사례를 들어보자. 자녀 교육 때문에 좋은 학군의 이른바 명문학교로 전입한 학부모가 있다. 그런
데 학교가 서서히 쇠퇴해 교내 폭력 서클이 판을 치고 '왕따' 현상이 만연하며, 선생님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식어 교육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 학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쉬만의 논리에 따르면 학부모는 자녀를 다른 학군으로 전학시키는 '빠져나가기', 학교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내기',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충성하기'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어떤
전략을 선택하는가는 그 조직이 개선될 수 있다는 신뢰의 정도와 학부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능력 있는 학부모 중에서 학교가 잘 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진 이들은 목소리 내기 전략을 이용한
다. 그러나 능력 있는 학부모 중에서 학교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빠져나가기 전략을 선
택할 것이다. 이들은 자녀를 신흥 명문 학군으로 전학시킬 것이다. 능력도 없고 학교에 대한 신뢰
도 없는 부모는 자녀를 망가져 가는 학교에 그대로 방치하는 충성 전략을 선택할 것이다.

빠져나가기와 목소리 내기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80~1990년대 한국 사회는
민주화 투쟁과 임금 투쟁 등 각종 시위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정치적 이유에서건 경제적 이유에서
건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각종 시위라는 목소리 내기 전략을 사용했던 것이다. 중요한 점
은 이러한 목소리 내기 전략의 이면에는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깔려 있
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목소리 내기가 만연하였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빠져나가기가 지배 전략으로 등장했
다.

교육제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자녀를 해외로 유학시킨다. 초기에는 돈 많은(능력 있
는) 학부모만 미국으로 자녀를 보냈지만, 이제는 호주 캐나다 중국, 심지어 인도와 필리핀마저 조
기 유학 대상국이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다.

또 케이블TV의 홈쇼핑 채널에서 빅 히트를 기록한 신상품이 등장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이민
상품'이다. 대학교수가 기꺼이 세탁소 주인이 되고 야채장수가 되는 빠져나가기 전략은 우리 사회
가 목소리 내기로는 바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녀의 조기유학, 사업체의 해외이주 그리고 가족의 이민.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목소리내기 전략
을 포기하는 대신 '빠져나가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사실 뭐니 뭐니 해도 내 나라에 살
고 싶어 한다. 특히 된장찌개와 정(情)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빠져나가기와 목소리내기에 대한 허쉬만의 분석이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조직과 국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적응하지 못한 사람' 혹은 '애국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직
또는 국가가 발전하려면 '어떤 문제가 있기에 이들이 빠져나가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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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3. 23 국제신문에 실린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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