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제정의 04월호 69호 - 회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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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경실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4-04-20 13:25 조회4,396회 댓글0건본문
부산경실련을 생각하며
윤순금
5월이 되면 부산 경실련에 첫 발을 디딘 지 딱 12년 째 접어들게 됩니다. 단체 발전을 위해서 딱히
한 것도 없으니 사무실 들어설 때면, 왠지 주눅들게 되고, 나이 몇 겹으로 쌓였어도 조직, 인간관
계, 살아가는 의미,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정체,나, 우리들의 정체등을 명쾌하게 대답해야함에도 불
구하고, 영 만족스러운 해답이 나오지 않는데다 여전히 찾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쩌면 평
생 찾아가고 만나가야할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처음 경실련에 문을 두드릴 때, 사무실은 보수동 책방 골목 입구 후미진 곳에 위치한, 8평도
채 되지 않는 작으마하고 어두컴컴한데가 허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상근 인원이라고는 간사 겸
사무국장 겸 머슴 겸 성명서 발표자까지 하는 30대 남성 달랑 한 분. 열악하기 그지없는데다가 자
원봉사자는 맹하고 순진무구한데다가 뒷북 잘치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매일같이 따분해
하는 얼굴을 서로 보면서 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봄날, 서클 후배 살살 꼬셔 속리산경실련대학생
회 캠프 참석을 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경실련대학생회 전국대회에서 제가 전국 대학생 대표
로 발제하였었는데, 발제 자리에 연세대학교 남학생과 어른들 발제하던 자리에서 떠들었던 기억
도 나는데, 참 철딱서니 없었지만, 패기만만하고, 싱그러웠던 때로 기억납니다. 속리산 등반에서
도 여성으로서 1등으로 산정상에 도착하여 귀염을 독차지 하였었는데, "부산여자 원래 쎄고, 강인
한 거 몰랐어예? "라고 우쭐거렸었죠. 참 아름답고 소중한 시절이었습니다.
90년대 초,선거철이 다가와도 , 선거감시기구가 딱히 출범되어져 있지 않았고, 지금처럼 총선시민
연대나 유권자연대, 아줌마연대,물갈이연대,공선협,국민연대등 다분화하고 세분화된 낙선.당선운
동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었던 때인지라 단체간 연대보다는 특정 의식있는 개인들이 주도적으로 펼
칠 수 밖에 없었던 산발적인 선거운동을 하였었습니다. 당시 사무국장과 저와 둘이서 함께 사직운
동장 바닥에다가 공명선거를 강조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홍보활동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지만, 열정만큼은 지금 어느 단체,어느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나 싶
습니다.. 몇 밤을 자지 않고 이런저런 고민하며 행사준비를 하고 발이 닳도록 뛰던 그 속내와 열정
은 어디서 왔을까 알다가도 모를 지경인데, 서간사님이 무척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93년 경실련에는 의미깊은 <환경사랑방>이라는 소모임이 있었습니다. 초의수교수님,오건환교수
님,김태경교수님,임호교수님,이동환처장님.....많은 분들이 이 사랑방을 통해서 부산의 환경정책
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였는데, 94년 가장 큰 화젯거리 중 하나는 패트병에 물을 넣어 판매하는 물
시판 관련된 정책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오건환교수님은 당시
지하수를 파서 물을 팔게되면 지하수 고갈되어 문제가 심각해질텐데..그 부분을 어떻게 해소해가
야할 지 무척이나 걱정하셨습니다. 그런 당시의 고민들이 종국에는 노장의 학자를 녹색도시21협의
회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도록 몰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호교수님은 환경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셨고, 참여자분들은 환경 문제를 염려하였고, 보다 정책적인 해법으로 나아갈 묘책은 없을
까 고민하셨습니다.
94년 참여연대와 경실련등 여러 주요 단체는 시의정감시단활동을 함께하게 됩니다. 산발적 의정활
동에서 보다 연대하는 운동으로 전개한 대표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상호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부패한 공무원들의 실상을 고발하고, 의회와 행정간 유착을 감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시민운동
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의회감시활동 기간동안 문화환경위원회에서 경청을 하게되었
는데, 뭘 적고 있노라면 뒷줄에 앉아계시던 환경과공무원들이 몽땅 일어나셔서 뭘 쓰나 관심있게
보시는 통에 난감해하기도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문화위원회 시의원님이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라 원고를 뒤적뒤적하다가 문화과 공무원들의 웃음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준비되지 못한 행
정과 의회측이 보여준 웃기엔 씁쓸한 의정 자화상이었습니다.
97년, 대구 위천지역에 공단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국정 사업 보고가 발표나고 난 뒤, 부산의 시민
사회단체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대선을 앞둔 정략적 사업이며 낙동강 인근에 사는 부산경남 주민
들의 건강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면 발끈하며 분노하였었습니다. 이 때, 경실련 이동환
처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도 십수만명이 모인 대규모 위천공단저지운동본부 집회를 이끌어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또 몇 날을 시청 차가운 바닥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거농성을 하였었습
니다. 추운 밤이되면 삼삼오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뉴스속보들을 듣고, 앞으로 방향들을 의논하였
는가하면, 아이들까지 합세한 그 곳에서 아예 가족들이 몽땅 나와 함께 위천공단을 설립을 반대하
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부산경실련만이 외따로 하지 않고, 시민들과 단체들간 협력과 연대 상호 보완을 하
며 함께 일구어왔습니다.
저는 그런 부산경실련과 함께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양분삼아 올 4월 동남아 3개국인 캄보디아, 베
트남, 태국의 동남아 시민사회,국제단체를 일주하고, 영국의 시민단체들을 직접 발품과 눈으로 경
험하면서 우리 시민단체 활동들과 비교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러 떠납니다.
이젠 우리 청년들이 나서야하고, 또 일궈온 땅에 화려한 꽃과 열매를 맺어가야할 때이고, 이젠 젊
고 패기있는 수많은 NGO들이 자기의 색깔에 맞는 곳을 찾아나서고 있기에 거기에 걸맞는 밭을 매
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밥벌이 재주없는 제가 시민의 자부심으로 여지껏 버
텨온 시간 속 경험들을 잘 살려서 부산의 NGO문화에 적지만 긍정적 기여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
다.
귀국 후 '부산아가씨의 돈남아기행' 라는 책도 저술할 계획도 있고, 돈을 적게 벌더라도 잘 살 수
있는, 자본에서 좀 더 자유로운 ,그러나 풍성한 삶에 대해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합니
다.
한국에 비주류지만, 주류로 부상하게 될 유럽과 동남아,캐나다와 호주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공정무역시민사회운동을 한국에 알려가고 새롭게 도래하는 시민사회운동 유럽과 동남아 주료도
소개하고 싶어하구요.. 이번 기행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의미있다고 생각하며 또 발품을 판만큼
소기의 본전은 뽑아올 단단한 각오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사실상 최초로 동남아 시민사회와
국제단체 현장르뽀로 알려가는 매신저로서 기능케 될테니 기대반, 셀레임반입니다. 맘은 이미 동
남아사람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른 봄, 계절에 걸맞지 않는 차가운 늦바람들이 거세어지더라도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마는 것을,
닭소리가 시끄럽다고해서 목을 비튼다할지라도, 반드시 아침은 오고야마는, 장자의 교훈처럼 앞
으로 수많은 깨끗하고 진취적인 청년 NGO들이 희망이 되고 아침에 되어 이 땅을 맑히고 밝히는
진정한 함성으로 부상하게 될 날이 오지 않나 기대합니다.
부산경실련을 주요한 삶의 준거틀로 만들어 그 속에서 삶을 경영하여 가고 사연을 만들어 갈 많은
청년들이 시민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춘풍 바람같은 새로운 활력을, 시민사회 변화와 변혁의
물결을 일으킬 날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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