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경부대운하, 낭만주의와 경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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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기철 작성일08-01-30 11:00 조회6,768회 댓글0건본문
[시론] 경부대운하, 낭만주의와 경제주의
** 권 기 철 [부산경실련 지역경제위원장/ 부산외대 비즈니스경제학과]
최근 한반도대운하에 관한 토론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이것을 보다보면 특이한 현상이 하나 눈
에 띄는데, 운하 반대론자들이 말문이 막혀 논쟁에서 상대방에게 밀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이
다. 어떤 토론회에서 이 현상 자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운하가 너무 비상식적이어서 반대론
자들이 기가 막혀 말을 못하는 것"이라는 농담반 진담반 설명이 공감을 얻었다. 대운하는 정말 여
러 가지로 비상식적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멀쩡한 강을 함부로 파면 생태계가 훼손되고 홍수
를 감당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자연은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나
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내륙운하가 필요 없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대운하는 이런
상식을 거스른다.
물류수단으로서 대운하는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정서에도 맞지 않다. 자장면 한 그
릇을 시켜도 번개처럼 갖다 주길 원하는 것이 한국 사람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시간에서 60시
간까지 걸린다고 하는, 필자가 보기에는 100시간도 더 걸릴 것 같은 운하에, 성질 급한 우리 동포
들이 꽤 많이 찬성하는 데에는 필경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운하찬성론에는 두 가지 부류
가 있다. 하나는 경제적 낭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적 경제주의이다. 앞엣것은 "(안 하는 것
보다) 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이고, 뒤엣것은 "됐나, 됐다, 하자!"이다.
낭만주의자들에게 경부대운하는 청계천의 연장선상에 있다. 어수선하고 복잡하던 복개도로와 시
장판을 철거하고, 외견상 맑은 물이 흐르는 쉼터로 바꾸어놓은 사업이 바로 청계천복원사업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복원된' 청계천을 보는 시선으로 운하를 보는 것이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물길이
만들어지는데다가, 공사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제적 기회도 생길 것이므로 금상첨화가 된다. '강물
에 유람선이' 떠다니는 낭만적인 운하가 경제도 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낭만주의이다.
경제주의자들은 이와 다르다.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제를 살려야겠다는게 이들의 입장이다.
사실 낙동강과 한강이 운하로 변신하여 배가 다니기 시작하면 그 물은 못 먹는 물이 된다. 그래서
벌써 서울에서는 한강 본류에 있는 모든 취수장을 운하와 관계없는 북한강 쪽으로 옮기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낙동강 유역 도시들은 사정이 다르다. 낙동강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 가령 부산의 경우, 합천댐 이용과 지리산댐 건설 등 아홉 가지 새로운 취수 방법이 거론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은 그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나중에 실행이 되더라도
그 물은 대구, 밀양, 김해 등과 나누어 써야 한다. 그러면 부산은 지금과 같은 풍부하고 값싼 물 사
용은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왜 대운하인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지역경제는 해가 갈수록
수도권에 기업과 사람을 내주고 활력을 잃고 있다. 무엇이든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일
단 잡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앞뒤 안돌아보고 경부대운하에 목매달게 되는 것이다. 경제
를 위한 '묻지마' 지지, 낭만적 찬성이다. 그래서 낭만적 경제주의이다.
경제적 낭만주의와 낭만적 경제주의는 비경제적이고 생존 위협적이다. 꼭 하자고 하면, 경제와
낭만을 살리면서도 위험하지 않고 상식에 맞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가령 대운하 계획 구간을 따
라 강의 양쪽에 '한·낙'강변철도와 '낙·한'강변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어떨까? 이 방법은 강을 훼손하
지 않고도 새로운 경부간 통로를 확보하고, 토목공사를 매개로 하여 국내 경기를 진작시킬 수 있
다. 이 철길과 찻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강을 바라보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운하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대운하에 쏟을 정력과 자원을 각 지역 내의
광역교통망-광역전철과 순환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쓰는 것이다. 그러면 경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고, 나중에 광역권 내 경제교류 확대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새 정부가 광역경제권 육성을 지역발전전략으로 채택한다고 하니, 그 전략의 실행을 위해서라면
대운하가 아니라 광역권경제의 기반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쓰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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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9 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내용입니다.
** 권 기 철 [부산경실련 지역경제위원장/ 부산외대 비즈니스경제학과]
최근 한반도대운하에 관한 토론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이것을 보다보면 특이한 현상이 하나 눈
에 띄는데, 운하 반대론자들이 말문이 막혀 논쟁에서 상대방에게 밀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이
다. 어떤 토론회에서 이 현상 자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운하가 너무 비상식적이어서 반대론
자들이 기가 막혀 말을 못하는 것"이라는 농담반 진담반 설명이 공감을 얻었다. 대운하는 정말 여
러 가지로 비상식적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멀쩡한 강을 함부로 파면 생태계가 훼손되고 홍수
를 감당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자연은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나
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내륙운하가 필요 없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대운하는 이런
상식을 거스른다.
물류수단으로서 대운하는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정서에도 맞지 않다. 자장면 한 그
릇을 시켜도 번개처럼 갖다 주길 원하는 것이 한국 사람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시간에서 60시
간까지 걸린다고 하는, 필자가 보기에는 100시간도 더 걸릴 것 같은 운하에, 성질 급한 우리 동포
들이 꽤 많이 찬성하는 데에는 필경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운하찬성론에는 두 가지 부류
가 있다. 하나는 경제적 낭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적 경제주의이다. 앞엣것은 "(안 하는 것
보다) 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이고, 뒤엣것은 "됐나, 됐다, 하자!"이다.
낭만주의자들에게 경부대운하는 청계천의 연장선상에 있다. 어수선하고 복잡하던 복개도로와 시
장판을 철거하고, 외견상 맑은 물이 흐르는 쉼터로 바꾸어놓은 사업이 바로 청계천복원사업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복원된' 청계천을 보는 시선으로 운하를 보는 것이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물길이
만들어지는데다가, 공사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제적 기회도 생길 것이므로 금상첨화가 된다. '강물
에 유람선이' 떠다니는 낭만적인 운하가 경제도 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낭만주의이다.
경제주의자들은 이와 다르다.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제를 살려야겠다는게 이들의 입장이다.
사실 낙동강과 한강이 운하로 변신하여 배가 다니기 시작하면 그 물은 못 먹는 물이 된다. 그래서
벌써 서울에서는 한강 본류에 있는 모든 취수장을 운하와 관계없는 북한강 쪽으로 옮기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낙동강 유역 도시들은 사정이 다르다. 낙동강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 가령 부산의 경우, 합천댐 이용과 지리산댐 건설 등 아홉 가지 새로운 취수 방법이 거론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은 그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나중에 실행이 되더라도
그 물은 대구, 밀양, 김해 등과 나누어 써야 한다. 그러면 부산은 지금과 같은 풍부하고 값싼 물 사
용은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왜 대운하인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지역경제는 해가 갈수록
수도권에 기업과 사람을 내주고 활력을 잃고 있다. 무엇이든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일
단 잡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앞뒤 안돌아보고 경부대운하에 목매달게 되는 것이다. 경제
를 위한 '묻지마' 지지, 낭만적 찬성이다. 그래서 낭만적 경제주의이다.
경제적 낭만주의와 낭만적 경제주의는 비경제적이고 생존 위협적이다. 꼭 하자고 하면, 경제와
낭만을 살리면서도 위험하지 않고 상식에 맞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가령 대운하 계획 구간을 따
라 강의 양쪽에 '한·낙'강변철도와 '낙·한'강변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어떨까? 이 방법은 강을 훼손하
지 않고도 새로운 경부간 통로를 확보하고, 토목공사를 매개로 하여 국내 경기를 진작시킬 수 있
다. 이 철길과 찻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강을 바라보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운하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대운하에 쏟을 정력과 자원을 각 지역 내의
광역교통망-광역전철과 순환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쓰는 것이다. 그러면 경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고, 나중에 광역권 내 경제교류 확대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새 정부가 광역경제권 육성을 지역발전전략으로 채택한다고 하니, 그 전략의 실행을 위해서라면
대운하가 아니라 광역권경제의 기반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쓰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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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9 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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