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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친중과 친미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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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광수 작성일04-07-02 13:59 조회4,3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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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親中과 親美 사이

                                ** 조광수 [부산경실련 집행위원장/ 영산대 중국정치학] **

 
 
한 학기가 끝났다. 아직 채점과 성적 처리 일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방학인 셈이다. 매번
학기가 한번 지날 때마다 아쉬움만 잔뜩 남지만 이번에는 특히 힘든 대목이 있었다. '한중 관계론'
수업 때문이었다. 학생들과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이 토론하고 고민했었다. 지금이 바로 한중 관계
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과제의 무거움에 전율하며 역사적 경험에서 지혜를 얻어보려 애를 썼다. 고려가 송나라와
요나라 사이에서 곡예하듯 살길을 찾던 시대도 살펴봤고,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받고 황망하게 명
나라에 원군을 청하던 시대 상황도 토론했다. 모두 동아시아의 질서가 구조적으로 변하던 시기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정작 중국에선 47년으로 끝난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 만력을 청나라로 바뀐 뒤
에도 200년이 넘도록 고집스레 써왔던 조선 사대부들의 심정도 헤아려봤다. 그 시절 우리의 선조
들이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명분은 명분대로 이해는 이해대로 따지고 비판했다. 결론은 역사는 똑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반복된다는 것이었고 우리는 번번이 '갑을(甲乙)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었
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동아시아의 질서가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 타
있는 형국이다. 지도자부터 누항의 필부들까지 지혜와 통찰을 다 짜내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 대목에서 '친중이냐, 친미냐' 하는 이분법적 유치한 수준의 논란에 머물러 있다면
난센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이 보기에는 우리가 친미인지 친중인지 헷갈리도록 해야 하고
중국이 보기엔 우리가 친중인지 친미인지 헷갈리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철 지난 '세력 균
형'의 논리대로 균형자 역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어느 한쪽에 쏠려 어느 한쪽을 잃을 필요는 없
다. 중국 같은 나라도 게임의 규칙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미국에 함부로 하지 않는다. 힘의 힘을
아는 자만이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친미와 친중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잡으면서 이해를 확보하려면 아무래도 사람 키우는 방법
밖엔 없다. 중국을 제 손바닥만큼 훤히 이해하는 인재 그리고 미국을 주머니 속의 구슬 만지듯 할
수 있는 인재들을 많이 갖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문제는 미국 유학은 유길준부터 따져 이미
1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인재 부족이라는 것이고 그나마 기개 있는 인재들이 적소에 등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그를 옹립하고 있는 이른바 '네오콘 그룹'의 핵심들과 개
인적으로 만나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에 누가 있는 것일까. 중국 상황은 더 심각하다. 수교한
지 불과 12년이니 지금 지도자들과 학연이나 인맥을 엮을 기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하더라
도 중국 지도자들의 은유를 담박 이해할 정도의 중국통이 얼마나 될까. 중국이란 코끼리를 구석구
석 더듬고 만져 나름으로의 출사표를 써놓은 인재들이 얼마나 될까. 중국을 숫자나 통계로만 보지
않고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인재들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나마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인재들을 모아놓는 변변한 기관도 없는 실정이다. 교육이 전부인 우
리에게 지역을 잘 아는 인재가 부족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인재가 부족한 이유는 아무래도 지역
전문가들이 평생 그 지역의 전문 영역을 집중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적은 탓이다. 지역학 박사인
누군가에게 미국의 대외 관계나 중국의 전쟁에 대해 30년 정도 연구하도록 지원해 준다면 전문가
가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사람이 자신이 살 시대를 선택할 수는 없다. 2004년 이 멀미나는 시대를 스스로 선택해서 살
고 있는 사람은 없다. 시대와 나의 만남은 그저 우연일 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심걱정 없는
시절을 한가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험이 되더라도 구조적 변화의 시대에 동행하는 것이 훨
씬 흥미롭다. 과연 시대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선택은 고통스럽다. 순간의 선택이 100년의 구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는 마치는 심정이 유난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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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에 실린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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