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죽음 : 떠난 자와 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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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경실련 작성일09-07-23 11:47 조회5,761회 댓글0건본문
** 조광수 (영산대 중국학과 / 부산경실련 운영위원) **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죽음에는 태산처럼 무거운 죽음과 문자 그대로 깃털처럼 가벼운 구차한 죽음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어떤 죽음일까.
나는 그의 사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아 ! 그는 역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구나. 과연 지사적 골기를 가진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어서 승부사로서 자신이 가진 마지막 카드인 목숨을 걸고 국면을 전환시켰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부하들을 궁지에서 구해준 남자다운 선택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도 그런 처지에 다다르면 비슷한 선택을 했으리라 공감도 느꼈다. 아무튼 자연인 노무현의 죽음은 비장하고 장렬했다고 할 수 있다. 지사로서의 인간 노무현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전직 대통령이란 엄중한 위상을 고려할 때도 과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권력의 정상과 추락을 두루 겪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과 과를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 것이 국민과 역사에 대한 의무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누구나 응분의 책임을 다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 과정이 초라하고 구질구질하더라도 견뎌야 할 때는 견뎌야 하는 것이다. 또 누군가 나를 해하려 하는 것이라면 진흙탕이 되더라도 분연히 나서서 맞서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품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양심이 예민했고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여, 바위절벽으로 몸을 던져 떠나버린 것이다.
여기서 짚고 싶은 내용이 두 가지 있다. 먼저 바위산에 몸을 던지는 죽음의 방식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바위는 보통 불을 뜻한다. 뜨겁고 무섭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바위 근처에 가면 그 기운에 밀려 다치기 마련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일부러 바위 위에 집을 짓고 버티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데 목숨을 거는 고행이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바위 아래 집을 짓고, 바위에 몸을 던진 것 모두 그의 불같은 성격과 관련 있다고 본다. 노무현, 그는 참 뜨거운 사람이었다. 다음, 그의 유언의 의미다. 전체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명문이지만 나는 특히 ‘글을 쓸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과연 그는 지성인이었던 것이다. 읽고 쓰지 못하는 병이 곧 죽음이라는 깊은 아픔에 나도 덩달아 아주 아팠다.
그러면 남은 자들 중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애도했을까? 첫째, 그의 처참한 죽음이 준 충격과 슬픔 그리고 연민 탓이다.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이 많고 정에 약하다. 생전에 친구였건 적이었건 간에 죽음이란 모든 은원을 무화시킨다. 망자에 대한 예우, 그것이 국민적 조문 열기의 첫 번째 이유다. 둘째, 그가 추구했던 가치에 대한 그리움이다. 임기 중의 잘잘못을 떠나 ‘바보 노무현’이 하고 싶어 했던 정치에 대한 향수가 있다는 뜻이다. 서민적 풍모와 서민 지향적 정책들, 지역감정 해소에 무모하게 번번이 도전했던 용기와 투박하고 탈권위적이었던 언행들이 현 정부에 대한 불만과 맞물리면서 새삼 그리워진 것이다. 셋째, 집단적 미안함 같은 것인데, 쉽게 설명 안 되는 감정이다. 그의 진심을 너무 몰라주었고, 너무 서둘러 실망하여 등을 돌려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송구한 마음이 퍼지며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조문 행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 권력의 지난 권력에 대한 보복적 성격의 수사를 비판하는 뜻도 있다. 현 정부가 하도 헤매니까 그나마 구관이 명관이었나 싶은 국민적 비감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정치권의 남은 자들이 보여준 행태가 한심스러웠다는 것이다. 무능하고 약한 정부는 지리멸렬함 그 자체였고, 허접스런 야당은 비열했다. 정부는 이른바 조문 정국을 의연하고 대범하게 정면으로 돌파했어야 했다. 법치니 공안이니 하는 썰렁한 논리로 통제하려는 시도 대신 따뜻함을 보였어야 했다. 야당도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때 만난 듯 호들갑 떨게 아니고 점잖게 조문을 주도했어야 했다. 상처 받고 힘든 시기였다. 위로와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그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
유골함이 묻히고, 흙이 덮어지고, 돌이 놓여 지며 떠난 자에 대한 예식은 끝났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그가 남긴 자취를 음미하며, 그에 대한 논란을 계속해 갈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산 자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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