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행복 준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부산경실련 작성일12-10-19 16:55 조회6,534회 댓글0건본문
행복 준비
** 김 대 래 [부산경실련 상임대표 / 신라대 경제학과] **
인류가 살아온 시간에 구분을 짓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러한 구분들 가운데에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들이 있다. 옛날에 우리가 성장하던 시절, 어머니로부터 흔히 듣던 말이 있었다. 우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어머니는 그때마다 "배가 불러 그렇지. 배 고파봐야 알지"라는 말로 우리를 질책하곤 했다.
전반적 소득 늘어난 '배부른 시대'의 불행
그렇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배고팠던 시절과 그렇지 않은 시절로 구분을 하는 것만큼 절실한 것이 있을까. 배고픔의 설움을 맛보지 않는 사람은 삶의 고단함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머니의 말 속에 담겨 있던 이 위대한 시대구분이 최근에는 학문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인구론'의 저자인 맬서스는 인구의 압박 때문에 인류는 영원히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류는 그 맬서스 함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에 의해 비로소 가능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빨리 식량이 늘어나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물질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인간의 삶도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펴졌다. 그리고 실제로 소득의 증가와 함께 행복감도 높아지는 비례관계가 어느 정도까지는 동반되었다. 경제발전에 따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한다면 이제 굶는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물질적 소비수준의 전반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전체적인 행복이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는 않았다. 2차 대전 후부터 행복지수를 측정해 왔던 미국의 통계를 보면 소득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는 거의 변동이 없다.
1인당 소득이 증가하는데도 행복지수가 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소득과 행복 간의 갭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는 최근 석 달 동안 6명이 잇달아 아파트에서 목숨을 던졌다. 사연은 가지가지이지만 밑바탕에는 가난이 놓여 있었다. 전반적인 소득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득 획득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아직 주위에 적지 않다.
그뿐 아니다. 최근에는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난동의 원인도 가지가지다. 개개의 사건마다 심리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원인들이 뒤섞여 나타나지만, 더 밑바탕을 보면 우리 사회의 교란된 행복감각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 호프집 주인 살인사건의 동기는 '그들이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2년 전, 서울 신정동 옥탑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도 '가족의 웃음소리가 불쾌해서'였다.
단절되고 고립되어 가는 사회에서의 행복교란 현상들이다. 남의 행복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속성이 불행의 한 축을 이루고, 나아가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이미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채워지지도 않을 행복을 추구하라고 시장은 끊임없이 탐욕을 부추기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투어 공약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은 아예 대선캠프에 국민행복특위를 만들고 거물급인사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연말로 가까이 갈수록 여야는 그 어떤 말보다 행복이라는 말을 두고 국민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말 무엇으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 뚜렷
사회보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몸을 던져야 하는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소득의 크기는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아직도 주위에는 많다. 나아가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매일같이 뉴스로 터져나오는 사건들을 보면 우리는 아직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행복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행복철학을 가져야 한다. 시장에서의 경쟁과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배가 더 불러지는 것보다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를 가지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사회의 핵심이다. 늦었지만 정말로 행복을 찾을 준비를 해야 한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9일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 대 래 [부산경실련 상임대표 / 신라대 경제학과] **
인류가 살아온 시간에 구분을 짓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러한 구분들 가운데에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들이 있다. 옛날에 우리가 성장하던 시절, 어머니로부터 흔히 듣던 말이 있었다. 우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어머니는 그때마다 "배가 불러 그렇지. 배 고파봐야 알지"라는 말로 우리를 질책하곤 했다.
전반적 소득 늘어난 '배부른 시대'의 불행
그렇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배고팠던 시절과 그렇지 않은 시절로 구분을 하는 것만큼 절실한 것이 있을까. 배고픔의 설움을 맛보지 않는 사람은 삶의 고단함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머니의 말 속에 담겨 있던 이 위대한 시대구분이 최근에는 학문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인구론'의 저자인 맬서스는 인구의 압박 때문에 인류는 영원히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류는 그 맬서스 함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에 의해 비로소 가능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빨리 식량이 늘어나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물질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인간의 삶도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펴졌다. 그리고 실제로 소득의 증가와 함께 행복감도 높아지는 비례관계가 어느 정도까지는 동반되었다. 경제발전에 따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한다면 이제 굶는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물질적 소비수준의 전반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전체적인 행복이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는 않았다. 2차 대전 후부터 행복지수를 측정해 왔던 미국의 통계를 보면 소득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는 거의 변동이 없다.
1인당 소득이 증가하는데도 행복지수가 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소득과 행복 간의 갭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는 최근 석 달 동안 6명이 잇달아 아파트에서 목숨을 던졌다. 사연은 가지가지이지만 밑바탕에는 가난이 놓여 있었다. 전반적인 소득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득 획득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아직 주위에 적지 않다.
그뿐 아니다. 최근에는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난동의 원인도 가지가지다. 개개의 사건마다 심리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원인들이 뒤섞여 나타나지만, 더 밑바탕을 보면 우리 사회의 교란된 행복감각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 호프집 주인 살인사건의 동기는 '그들이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2년 전, 서울 신정동 옥탑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도 '가족의 웃음소리가 불쾌해서'였다.
단절되고 고립되어 가는 사회에서의 행복교란 현상들이다. 남의 행복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속성이 불행의 한 축을 이루고, 나아가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이미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채워지지도 않을 행복을 추구하라고 시장은 끊임없이 탐욕을 부추기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투어 공약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은 아예 대선캠프에 국민행복특위를 만들고 거물급인사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연말로 가까이 갈수록 여야는 그 어떤 말보다 행복이라는 말을 두고 국민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말 무엇으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 뚜렷
사회보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몸을 던져야 하는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소득의 크기는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아직도 주위에는 많다. 나아가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매일같이 뉴스로 터져나오는 사건들을 보면 우리는 아직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행복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행복철학을 가져야 한다. 시장에서의 경쟁과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배가 더 불러지는 것보다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를 가지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사회의 핵심이다. 늦었지만 정말로 행복을 찾을 준비를 해야 한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9일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실린 내용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