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싸이와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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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경실련 작성일12-09-28 16:50 조회5,997회 댓글0건본문
싸이와 김기덕
** 김대래 [부산경실련 상임대표/신라대 경제학과] **
몇 년 전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 봄 축제에 초대 가수로 싸이가 왔다. 예고했던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싸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한 곳에서 공연을 하고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나타난 싸이가 무대에 올라와 인사를 할 때 나는 또 한번 실망을 했다.
해외에서 평가받은 불편함
이미 한차례 공연을 하고 온 탓에 목이 완전히 잠겨 있었다. 인사를 하는데 말이 잘 들리지가 않았다. 옆에서 학생들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몇 곡 부르는 흉내내고 가겠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노래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목이 풀리기 시작했고, 특유의 막춤과 함께 열정적으로 관객들과 교감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늦게 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싸이는 한 시간이 넘게 놀다가 갔다.
그 뒤 가끔씩 싸이 이름을 들을 때면 그날을 생각하면서 싸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싸이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요즘에는 미국에서 대접을 받으며 활동하는 모습들이 유튜브 조회수 갱신기록과 함께 연일 전해지고 있다.
물론 싸이가 형편없이 덜 알려졌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퍼포먼스할 정도의 파워를 가진 가수, 아이돌 가수들을 제외하고 비록 막춤이지만 춤추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로 그 나름대로 자리매김을 해 왔다. 그렇지만 싸이 스스로가 자신을 B급으로 표현했듯이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가진 싸이가 대한민국 70%의 아저씨 몸매로 추는 춤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것,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를 본다. 우선 미국에서 인정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싸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까. 영화감독 김기덕도 마찬가지이다. 김기덕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꾸준히 받지 않았다면 과연 국내에서 설 자리가 있었을까.
어쩌면 두 사람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불편한 존재들이었다. 잘생긴 외모만을 쳐주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싸이의 얼굴과 몸매는 불편하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하나같이 관람하기에 불편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싸이는 B급이고 김기덕 감독은 비주류로 분류되어 왔다. 이러한 싸이와 김기덕이 해외에서의 높은 평판으로 국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있다.
아니, 그동안 저평가되어 온 것들을 한순간에 만회하고 있다. 싸이의 역량과 겸손함을 칭송하고 김기덕의 불편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국의 힘을 빌려 알게 되는 것은 어쩐지 씁쓸하다. 다양성과 패자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에서 획일화된 잣대 안에 들지 못했을 때 우리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싸이와 김기덕의 성공은 문화적 취향의 다양성과 그것의 세계적 가능성에 대한 소중한 이해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과거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기덕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아리랑을 부른 것은 가슴 뭉클한 일이었다. 또한 싸이가 미국에서 주눅들지 않고 늠름하게 춤을 추는 것이 뿌듯한 것도 사실이다.
호들갑스러운 애국심 경계해야
그러나 그러한 뭉클함과 뿌듯함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너무 가져가는 것은 좋지가 않다. '당신이 애국자입니다'에서부터 '당신이 있어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은 너무 호들갑스럽다.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적 성취를 국위선양에 연결하는 것은 외국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서야 그들을 인정하는 것과 정신세계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실 싸이와 김기덕의 성공이면에는 오랫동안 세계로 뻗어나갔던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의 누적된 성과가 적지 않게 기여하였을 것이다. 싸이 이전에도 미국에 진출한 가수들이 있었고, 김기덕만큼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감독과 배우들이 있었다.
그들의 성취를 과대하게 축하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도 부담이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어쩐지 우리 국민들은 아직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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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9월 26일 자,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대래 [부산경실련 상임대표/신라대 경제학과] **
몇 년 전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 봄 축제에 초대 가수로 싸이가 왔다. 예고했던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싸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한 곳에서 공연을 하고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나타난 싸이가 무대에 올라와 인사를 할 때 나는 또 한번 실망을 했다.
해외에서 평가받은 불편함
이미 한차례 공연을 하고 온 탓에 목이 완전히 잠겨 있었다. 인사를 하는데 말이 잘 들리지가 않았다. 옆에서 학생들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몇 곡 부르는 흉내내고 가겠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노래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목이 풀리기 시작했고, 특유의 막춤과 함께 열정적으로 관객들과 교감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늦게 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싸이는 한 시간이 넘게 놀다가 갔다.
그 뒤 가끔씩 싸이 이름을 들을 때면 그날을 생각하면서 싸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싸이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요즘에는 미국에서 대접을 받으며 활동하는 모습들이 유튜브 조회수 갱신기록과 함께 연일 전해지고 있다.
물론 싸이가 형편없이 덜 알려졌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퍼포먼스할 정도의 파워를 가진 가수, 아이돌 가수들을 제외하고 비록 막춤이지만 춤추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로 그 나름대로 자리매김을 해 왔다. 그렇지만 싸이 스스로가 자신을 B급으로 표현했듯이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가진 싸이가 대한민국 70%의 아저씨 몸매로 추는 춤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것,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를 본다. 우선 미국에서 인정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싸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까. 영화감독 김기덕도 마찬가지이다. 김기덕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꾸준히 받지 않았다면 과연 국내에서 설 자리가 있었을까.
어쩌면 두 사람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불편한 존재들이었다. 잘생긴 외모만을 쳐주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싸이의 얼굴과 몸매는 불편하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하나같이 관람하기에 불편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싸이는 B급이고 김기덕 감독은 비주류로 분류되어 왔다. 이러한 싸이와 김기덕이 해외에서의 높은 평판으로 국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있다.
아니, 그동안 저평가되어 온 것들을 한순간에 만회하고 있다. 싸이의 역량과 겸손함을 칭송하고 김기덕의 불편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국의 힘을 빌려 알게 되는 것은 어쩐지 씁쓸하다. 다양성과 패자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에서 획일화된 잣대 안에 들지 못했을 때 우리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싸이와 김기덕의 성공은 문화적 취향의 다양성과 그것의 세계적 가능성에 대한 소중한 이해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과거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기덕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아리랑을 부른 것은 가슴 뭉클한 일이었다. 또한 싸이가 미국에서 주눅들지 않고 늠름하게 춤을 추는 것이 뿌듯한 것도 사실이다.
호들갑스러운 애국심 경계해야
그러나 그러한 뭉클함과 뿌듯함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너무 가져가는 것은 좋지가 않다. '당신이 애국자입니다'에서부터 '당신이 있어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은 너무 호들갑스럽다.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적 성취를 국위선양에 연결하는 것은 외국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서야 그들을 인정하는 것과 정신세계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실 싸이와 김기덕의 성공이면에는 오랫동안 세계로 뻗어나갔던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의 누적된 성과가 적지 않게 기여하였을 것이다. 싸이 이전에도 미국에 진출한 가수들이 있었고, 김기덕만큼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감독과 배우들이 있었다.
그들의 성취를 과대하게 축하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도 부담이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어쩐지 우리 국민들은 아직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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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9월 26일 자,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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