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의 경제산책
동일한 경제현상이 경제학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많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평가하기 위해 그중 한 가지만 살펴보자. ‘논리적 방법’과 ‘역사적 방법’의 차이가 그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논리적 모형’이다. 그들은 자신의 논리구조에 맞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도 배척해 버린다. 반면 비주류 경제학자들에겐 역사적 사실이 더 중요하다. 모형의 논리적 일관성을 사수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떤 모습을 갖는가? 역사는 시간의 흐름이다. 이 속에서 인간의 경험은 양적으로 증가한다. 주류 경제학은 이런 변화가 단순비례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 경험을 활용한다. 이런 ‘학습효과’ 때문에 다음 단계의 경험 규모는 누적적으로 증폭한다. 한 원인으로 인해 결과가 나타났지만, 다음 단계에서 그것이 새로운 원인으로 작용하여 또다른 결과를 유발하였으니, 변화된 현실을 초기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몸체만큼 커진 눈덩이를 처음 하나의 눈송이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시간이 흐르면 이 정도 변화로 끝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것처럼 사회는 동질적 인간들로 스마트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양적, 질적으로 다른 인간들이 뒤섞여 살아간다. 이런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인간들은 다른 경험들을 교환하게 된다. 그 결과 오늘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과 다르게 질적으로 변해 버린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삶의 방식이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선택한 길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주류 경제학의 연구 방법을 따르면 물론 후회할 필요가 없다. 이들에게 삶은 ‘논리적 시간’을 통과하기 때문에 이전의 상태로 언제든지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시간은 ‘가역적’이다. 하지만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의 나는 학습효과로 인해 양적으로 증폭되어 버렸으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나아가 이 모습도 현재의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니 되돌아갈 수 없다. 인간이 통과하는 시간은 논리적 시간이 아니라 ‘역사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간의 삶은 ‘비가역적’이다. 후회스럽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게 인생이요, 인간의 역사다. 그래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안타까움을 시로 달랬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되었다. 경제민주화의 이념은 그동안 어디론지 사라지고 복지 공약도 대폭 후퇴했다. 입에 달고 다니던 약속과 신뢰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뜬금없이 창조경제로 이를 만회하려 하나 아무런 내용도 없다. 민주주의도 크게 훼손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비가역적이니 후회해도 소용없다. 정치에 무심했던 시민, 정치지형을 오판한 정치인 모두 역사적 방법론을 기억하며 성찰해야 한다. 6월이면 지방선거다.**********************************************************************
이 글은 2014년 2월24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