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의 경제산책
요즘 ‘공공재’에 대한 보수집단의 공격이 거세다. 공격의 목적은 정부가 공급하던 공공재를 사적기업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 공격의 배후에 주류경제학의 빈약한 공공재이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말하면 믿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들에 따르면, 공공재는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의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사적기업이 공급에 실패하니 불가피하게 정부가 공급한다는 것이다.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을 생각해 보자. 일부 ‘어둠의 자식’을 제외하면 가로등 불빛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수요가 이렇게 크니 사적기업의 관심은 매우 크다. 하지만 가로등 불빛을 사용하는 수많은 행인들에게 가격을 매겨 사용을 배제할 방법이 없다. 또 가로등 불빛 하나를 놓고 서로 경합을 벌이지 않고 여러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사적기업이 이런 재화를 공급할 리 없다. 시장에 내놔봤자 이윤은커녕 본전도 못 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이 거부하니 정부가 공급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결국 주류경제학자들에게 가로등은 비배제성, 비경합성 등 그 재화의 ‘물리적 속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성이 야기한 ‘불경제성’ 때문에 공공재로 된다. 하지만 가로등이 없는 밤길은 불편하며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한다. 반면 불빛 차로와 골목길은 모든 사람에게 이롭다. 밝고 안전한 밤은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 이런 공익을 사익집단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나아가 이윤이 발생하든, 손실을 입든 가로등 불빛은 항상 공급되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며 경제적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 비배제성과 비경합성 그리고 불경제성 때문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에 가로등 불빛은 공공재로 된 것이다! 치안과 국방도 그렇다. 전기와 수도를 보자. 이런 재화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가로등보다 더 크다. 사적기업이 눈독을 들일만하지만 너무 큰 자본이 요구된다. 그래서 큰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정부가 공급해야 한다. 싫지만 또 떠맡을 수밖에! 이것도 주류경제학의 공공재이론이다. 이런 재화의 공급을 사적기업에 맡기면 가난한 사람들은 21세기에도 호롱불과 갈증으로 고통받아야 한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리자면, 이런 것들은 무조건 공급되어야 한다. 나아가 빛과 물은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사회적 재화다. 이런 것들은 투자자본의 규모 때문에 공공재로 되지 않았다. ‘인권’과 ‘사회적 목적’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급하게 된 것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오해하듯이 공공재는 비배제성, 비경합성, 그리고 대규모 자본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공공의 이익과 인권 그리고 사회적 목적 때문에 생겼다. 그러한 위대한 과제를 이기적인 사적기업에 맡기면 안된다. 그것은 무조건, 그리고 적극적으로 정부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니 공공재에 더 이상 손대지 말라. 철도도 바로 이런 공공재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4년 1월13일자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