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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의 경제산책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학의 연구 방향도 이 명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의식주 등 생존에 필수적인 이런 조건을 마련하자면 경제적 소득이 필요하다. 따라서 물질, 나아가 경제적 소득은 행복의 일차적 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소득이 증가하면 인간의 행복도 커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득이 높아진다고 해서 인간이 마냥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0년대 미국 내 소득 수준별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 보았다. 결과는 일견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곧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의 만족도는 커진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현실도 발견되었는데,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삶의 만족도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컨대 연간 소득이 약 1만~1만5000달러 이상 계층의 경우 소득이 증가해도 이후 삶의 만족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시계열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1972~1991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꾸준히 증가하였지만, 이 기간 삶의 만족도는 증가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였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주류 경제학의 예상과 다른 역설이 왜 일어났을까? 여러 이유 중 소스타인 베블런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첫째 요인으로 물질의 결핍을 꼽는다. 하지만 ‘멍청한 제도’ 혹은 ‘문화’ 때문에 인간은 불행해진다는 사실도 똑같은 정도로 지적했다. 그는 먼저 제국주의 집단의 애국주의 문화가 인류를 커다란 불행에 빠뜨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또 그의 <유한계급론>에서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유한계급’의 과시 문화, 교활함과 잔인함, 그리고 사기와 기만으로 얼룩진 기득권층의 성공 문화, 이런 문화의 학습을 강제하는 고등교육 제도가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역설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보수적 태도와 민주주의의 훼손을 불행의 원인으로 특별히 부각시켰다. 본성상 인간은 경제적 궁핍 못지않게 저능한 문화와 정치적 속박을 혐오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베블런의 이런 주장은 많은 경제학자들의 후속 연구들에 의해 실증되었다. 특히 민주주의 제도와 행복에 관한 거의 모든 실증연구 결과는 일치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정치적 자유와 참여 가능성이 클수록 삶의 만족도는 커지지만, 반대일 경우 불행해졌다! 지난 2003~2012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5배 증가하였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증가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다. 독과점 기업의 약탈적 관행,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인간적 입시제도, 세계 최고의 교육비와 치솟는 주거비, ‘성공한’ 친일 및 독재 세력이 존경받는 문화, 최근엔 해묵은 ‘종북놀이’ 문화, 그것도 모자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귀환한 독재와 민주주의의 훼손, 이 모든 것들이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불행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국민행복시대? 저소득층에 대한 분배와 정의로운 문화, 그리고 민주적 제도 없이는 내년에도 국민은 행복은 고사하고 안녕조차 할 수 없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3년 12월 30일자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