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 영산대 교수 |
한성안의 경제산책
1870년대 경제학에서는 수학 방정식을 이용하여 경제학을 ‘순수과학’으로 만들고자 하는 혁명이 일어났다. 순수한 모습을 띠자면 수학체계를 더럽히는 몹쓸 존재들이 제거되어야 하는데, 당시 혁명 주도자들에게 정치·사회·문화 같은 ‘비경제적 요인’들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이런 불순물들을 털어내고 나니 경제학 모형은 아름답게 보였다. 경제학이 아름다워지자면 경제학으로부터 비경제적 요인들을 추방하면 되는구나! 이게 바로 현대 주류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들에게 정치·사회·문화는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순수모형을 더럽히는 철천지원수와 같다. 비경제적 요인들에 대한 증오는 미학적 욕구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적 행위, 사회적 관계, 문화적 습성은 각종 ‘제도’를 형성한 후 순수시장의 작동을 방해한다. 결국, 이들에 대한 증오 뒤에는 제도에 대한 증오가 숨어 있는 것이다. 순수시장이 제도로 오염되면 이윤을 향한 기업의 무한한 욕망이 좌절된다. 그런 고귀한 자유에 대한 억압은 용납될 수 없다. 이들이 제안하는 정책은 ‘규제완화’ 딱 한 가지다. 곧, 시장에서 제도를 없애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프레이저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로 표현된다. 이 총체적 지수는 다양한 하위지수들을 포함한다. 이 지수들을 발표하면서 이들은 경제자유도가 클수록 경제는 더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모리스 올트먼 교수는 두 연구소의 경제자유지수와 성장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였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총체적’ 경제자유지수와 성장은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그 효과는 대략 1인당 소득 2만달러부터 체감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자유도가 커지면 경제가 실제로 성장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자유로워지더라도 성장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것의 하위지수인 ‘규제완화지수’의 성장효과는 다른 하위지수에 비해 미미하였으며, 그 효과는 더 빨리 체감하였다. 나아가 가장 혐오하는 ‘노동시장 규제제도’는 경제성장과 거의 무관하였다. 심지어 ‘정부의 지출규모’가 작아질수록, 미미하긴 하지만 성장은 감소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부패지수’와 성장의 상관관계는 모든 하위지수들 가운데 가장 컸다. 부패가 감소할수록 성장은 가장 강하게 촉진되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시민사회와 민주정부가 기업의 자유방임을 ‘규제’할 때 경제는 더 성장하더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국회 연설에서 제조업, 환경은 물론 서비스 분야에서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성장을 촉진하겠다고 하였다. 아마 각종 기업 관련 법규와 노동규제의 철폐를 암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완화와 노동시장의 자유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에서 그 효과는 미미할 뿐 아니라 체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완화될 대로 완화되어 있는 부패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모든 임명 대상 고위공직자들이 하나같이 병역기피, 위장전입, 정경유착, 탈세, 투기에 연루된 나라에서 경제가 더 성장할 리가 없다. 국정원의 불법선거개입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2013년 12월2일 자, 한겨레신문 [경제산책]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