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 '불황형 신용불량'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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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경 작성일04-03-28 10:42 조회4,929회 댓글0건본문
[김태경 경제포럼] '불황형 신용불량' 해법은
[ 동남발전연구원장 ]
“집에 들어가는 게 겁납니다. 밤낮으로 빚 독촉이 들어오는데 갚을 능력은 없습니다. 건설현장에
서 품도 팔고 대리운전도 하면서, 아내는 식당에까지 나갔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기란 불
가능했어요. 이제는 가족들이 빚 공포로부터 벗어나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겠죠.”
사업에 실패해 사채까지 끌어썼다가 빚감당을 하지 못해 가정파탄의 지경에 이른 한 신용불량자.
그에게는 최근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가뭄속의 단비와 같은 조치일 것이다.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를 구제하기 위해 내놓은 정부의 대책이 당사자들에겐 환영받을
일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비판의 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지적은 도덕적 해이. 무엇
보다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해결해준다”는 그릇된 인식을 가질 수 있고 열심
히 일해 성실히 빚을 갚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조치가 아니냐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방지와 형평성의 문제는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부
분의 가정은 빚을 지게 마련이고 신용사회에서 빚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책임진다는 시장의 규율
을 지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원칙론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 도덕적 해이를 극단적인 수단으로 처리할 수 없을 뿐 아니
라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긴 어렵다. 오늘의 대규모 신용불량 사태를 돌이켜 보면 정부의 책
임도 크다.
불황 탈출의 통로로 손쉽게 소비의 영역을 선택, 카드복권제와 소득공제조치 등으로 가계 소비를
부추겼고 무분별한 카드사의 회원확장도 한 몫 했다.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 또한 과거를 무시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신용 불량자를 대거 양산시켜 놓고
이제 와서 헤어나기 힘든 신용 불량의 혹독한 쓴 맛을 보도록 하는 게 진정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
는 것일까.
도덕적 해이를 중시했다면 처음부터 카드사의 무분별한 진출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까지 과당경
쟁을 벌이는 시점에 시장에 개입했어야 옳았다.
현 시점에서 고민할 점은 오히려 신용불량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사
례만 보더라도 ‘향락적 신용불량’에서 ‘불황형 신용불량’이 늘고 있다.
개인의 신용불량을 초래하는 원인은 부채를 감내할 수 없는 소득의 부족에 있다. 신용불량자의 반
수 이상이 20대와 30대, 그리고 저소득층이고 전체 실업자중 청년실업자가 50%를 넘어서고 있다.
또 저학력자와 비정규직, 미취업자의 부채보유 부담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안정되고 적정한 소득
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 제공이 부채부담 감소의 첩경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 경제상황은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소비와 투자는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고용 확대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우리 경
제를 지탱하는 수출도 세계경제의 회복이라는 외적 환경에 기인한 바 크다. 수입유발형 수출구조
속에서 고용없는 성장의 한계를 벗어나긴 어렵다.
결국 우리 경제의 질적 개선이라는 근원적 수술을 하지 않는 한 투자 확대와 고용 증가를 기대하기
는 요원하다.
이번 기회에 정부의 정책도 정교해져야 한다. 국민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가계나 기업의 빚이 느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부채란 항상 이중성을 띠고 있다. 적정한 부채는 소비
증가→투자증가→생산증가→소득증가→경제활성화라는 선순환의 요소로 작용한다. 경제에 악영
향을 초래할 과도한 부채의 조정과 감독이 거시경제적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신용불량 문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 신용 파산을 ‘사회적 불명예’로 생각하는 분
위기를 통해 풀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정부가 사적인 채권채무 관계에 자주 개입할 경우 신용사회
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이번 조치로 인한 부작용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는 점에서 근원적이
고 체계적인 신용대책을 정부의 학습효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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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5일 국제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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