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 방송과외의 고육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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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래 작성일04-03-01 12:28 조회4,816회 댓글0건본문
[김대래 시론] 방송과외의 고육책
*** 김대래 [신라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
최근 들어 우리 민족의 장래에 대한 진단과 걱정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새로이 전개되
는 동북아 시대를 떠올리면서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있다. 또 한반도 주위를 둘러싼 열강들의 움직
임에서 과거의 쓰라렸던 교훈을 되새기기도 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이러한 거창한 문제만이 우리의 미래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작
더 소중한 것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발표됐던 많은 통계수치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국가가 되어버린
사실이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욱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
는 것이 되고 있다. 더욱이 거의 전적으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주위를 돌아보자. 어른들은 만나면 그저 아이들 공부시키는 얘기뿐이다. 이들의 얘기 속에 아이들
이 매일 다니는 학교는 없다. 학부모들에게 학교는 그저 평가를 하는 기관일 뿐이다. 진짜 공부는
밖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바깥에서 더 좋은 사설 교육기관을 찾는 것이 교육의 성공에
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확신한다.
사실 현실이 그러하다. 서울 강남지역의 고등학교가 이른바 명문대에 월등하게 많은 비율의 졸업
생을 합격시키고 부모 직업에 따라 아이의 대학 진학에 큰 차이가 생긴 현상은 이미 오래됐다. 심
지어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보다 전업주부가 챙기는 학생의 성적이 좋다는 것도 입증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결국 좋은 여건에서 자란 아이의 미래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의미
다.
사교육에 의해 좌우되는 입시의 성과, 그로 인한 공교육의 피폐와 가난의 대물림, 여기에서 많은
부모들이 학생에 앞서 먼저 좌절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교육을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들
의 절망, 그것이 바로 예비 부모들로 하여금 아이들을 가지지 않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같은 추세의 궁극적 결과는 파국이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나이든 사람을 먹여 살릴 젊은이
의 숫자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사실을 발견하
게 된다. 아이를 많이 낳았던 시절에는 노후를 자식에게 의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국 세금 등 어
떤 형태이든 간에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에게 고령층이 의존하는 시대가 왔음을 말한다. 즉 아이들
이 부모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유 자산으로 점차 변모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아이들을 서로 경쟁 상대로만 생각해 자신의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교육을 시키려 애쓴
다. 이같은 현상의 결과는 역설적으로 출산을 부담스럽게 여기면서 또 우리 사회의 근본을 파괴하
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사교육의 대응책으로 교육부가 며칠 전 비장의 사교육비 경감대책
을 내놓았다. 교육방송(EBS) 수능강좌 속으로 사교육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수능을 EBS
수능강좌에서 출제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교육의 범람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학교 밖 과외를 국가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획기적이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기대는 미
지수다. 지난 97년 위성TV 과외방송도 몇 년 반짝하다가 학생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불특정 다수
를 대상으로 하는 EBS 강의가 학생의 수준이나 수요자의 요구에 맞추어 전문화되어 있는 강남의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EBS 과외의 정착 여부를 떠나 출산을 포함해 육아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근
본적인 개선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 일변도의 교육 시스템은 당장의 효율을 가져
다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통합하면서 효율을 발휘하는 시스템의 구축이
다.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를 여전히 외면하는 정부에 대한 답답함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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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2일자 국제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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