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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정치,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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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광수 작성일04-02-07 12:14 조회5,2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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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정치, 아무나 하나
                                                                            --- 조광수 [영산대 교수] ---

천하의 일에는 누항의 필부들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일단
의 젊은 정치학도들이 어두운 정치 현실을 걱정하면서 혹시나 15대 총선이나 16대 총선 때쯤 가면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도 기개와 출사표 하나만으로 정치에 뜻을 둘 수 있을까 하는 우국지정을
나눈 적이 있다.

당시는 집권당의 독점을 과점으로 위장시켜 줄 만큼의 어용 야당만 휑하니 존재하던 11대 국회 시
절이었다. 그 때는 뜻 있고 기개 있는 인재들이 침묵해야 하는 차가운 시절이었다. 정치의 선함보
다는 악성이 두드러지고 정치의 지리멸렬함만 잔뜩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에 15대나 16대 총
선 때가 되면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는 얘기는 정치 발전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 정치가 11대 국회 시절에서 17대 총선을 앞둔 지금까지의 20년 동안 얼마나 발전
했을까. 우리 정치의 수준이 일류 인물들을 흡수할 만큼 매력적이 되었을까. 돈도 없고 연줄도 없
지만 그래도 기개 있고 철학 있는 인재들이 출사표를 던질 만큼 개방적이 되었을까.

답은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치 시장이 개방적으로 된 것은 확실하다. 기개
와 소신만 갖고 출사표를 던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문제는 정치에 면허가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
렇다고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야심이나 대중적 인기만으로 될 일이 아
닌데 코 앞에 닥쳐온 총선의 승부에만 집착한 나머지 여야 모두 상품의 논리만으로 인재들을 취합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인재 충원의 개방성이 아니라 정치적인 원칙이나 전문성의 문제를 염
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3분 걸려 구두를 한 켤레 닦을 때도 반짝반짝 기분 좋게 닦아주는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괜히 구두
약만 떡칠을 해놓는 돌팔이도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구두 닦는 일도 손님을 만족시켜 줄
정도가 되려면 3년의 공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똑같은 값 주고 자장면 한 그릇을 사먹을 때도
서너 젓가락도 안되어 금세 다 먹었나 싶게 맛깔스러운 집이 있는 반면 도통 면이 줄지 않아 이것
도 돈 받고 파는가 싶은 집도 있다. 자장면 맛있게 만드는 것도 그 한 그릇 값만큼 싸게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자(莊子)에 포정해우(丁解牛)라는 우화가 나온다. 소 백정 한명의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소를 포
를 다 뜨고 나도 그 소가 저 자신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것을 본 임금이 대단한 기술
이라고 칭찬을 했더니 포정은 이 정도 수준이면 기술이 아니라 도(道)라고 대답했다.

포정이 말하길 소를 처음 잡았을 때는 그저 소 한 마리의 덩치밖에 안 보였는데 3년 동안 공부하
는 자세로 작업을 하다 보니 소의 근골과 맥락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의
구조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숙련된 경지에 들고나니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칼이 19년이나 되었
지만 금방 간 칼처럼 여전히 예리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백정은 소를 베고 쪼개고 하느
라 칼 한 자루를 한 달도 못 쓰고 좀 노련한 백정은 그나마 쪼개기만 하고 베지는 않으니 칼 한 자
루를 1년은 쓰게 되지만 자신은 베거나 쪼개지 않고 소 근골 사이사이에 춤추듯 칼을 대기만 하면
자연스레 해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포정도 도통하려면 만만찮은 공부가 필요할진대 정치라는 직업은 분연히 나서기만 하면 누
구나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굳이 정치가 물리학보다도 어렵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까지 인용하
지 않더라도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힘든 일이다.

정치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이 많은 과제를 사회의 다른 영역에 소모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
고 해결하려면 어쨌거나 우수한 인재들이 정치판에 모여야 한다. 문제는 출사표를 던지고자 하는
인재들이 검증된 전문가들이고 군자들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소인배들의 삼류 정치쇼
가 아닌 군자들의 의로운 싸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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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2월4일자에 실린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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