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최저생계비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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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래 작성일04-09-13 20:08 조회4,639회 댓글0건본문
[시론] 최저 생계비의 정치학
** 김대래 [부산경실련 집행위원, 신라대 국제통상학부] **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끔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취하는 비상수단이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은 그 중에서
도 가장 극단적이다.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먹는 것을 중단하는 단식 역시 고통스러운 항의 수단
이다.
얼마 전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비상국민행동의 10만명 릴레이 단식농성 선언 역시 파급효과를
높이려는 비상수단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을 반대하며 단식을 여태 풀지 않
는 지율스님의 고통도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항의 표시의 단식은 자율적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어떤 측면에서 감내
할 수 있는 고통일 수도 있다. 게다가 목적이 달성되거나 탈진이 심할 경우 그만둘 수도 있어 단식
의 고통은 한시적이고 탈출구가 있는 셈이다.
반면 정말로 돈이 없어 먹지 못하는 상황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
선 오늘날 입에 풀칠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정은 간단치 않다. 물론
다른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식품만 구입하면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게 먹을거리로 모든 것이 충족되지는 않는다. 다니려면 차도 타야 한다. 다른 사
람과 연락하기 위해서는 전화도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옷과 신발 그리고 노트와 연필도
사야 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생존비' 대신 '최저생계비'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
최근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정부가 정한 최저 생계비로 실제 살아보는 이색 체험 캠페인을
벌였다. '한달 체험단'은 서울의 한 '달동네' 월세방에서 꼬박 30일을 최저생계비 36만8000여원만
으로 먹고 자며 생활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는 105만5000여원이다.
달동네 최저생계비 체험생활을 했던 지원자의 소감이 최근 공개됐다. 결과는 실패였다. 화장실을
비롯한 달동네 주거생활의 불편함은 일단 그렇다 치자. 1인 가구의 '최저 생계비' 36만8226원으로
한달을 지낸 어느 젊은이의 소감은 삶의 빠듯함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는 행사 시작 8일 만에 잔고가 13만2900원으로 줄었다. 먼저 집세 10만원을 떼냈다. 이어 하루
교통비 2000원과 회사 구내식당 점심값 2500원 등으로 생활비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충동을 못 이
겨 몇 번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운 것이 결정타였다. 그 중에는 4000원짜리 자장면도 있었다.
4인 가족 최저생계비로 살아가고 있는 가정의 가계부를 정리했던 체험자는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손자들을 위해 사는 5000원어치의 쇠고기도 사치로 비친다고 말했다. 매일 가계부를 들
여다보는 체험자는 이러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숨이 턱까지 막혔다고 밝혔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일상화된 그러한 생활은 정말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최저생계비 수급자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외국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최저생계비 수
준은 사회 전체의 평균소득에서 훨씬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
생활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더욱이 세계적인 비교가 일상화되는 오늘날, '궁핍의 스트레스'를 받
는 집단이 폭넓게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체제 유지와 활력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
다. 세계 최저로 떨어진 출산율의 이면에는 이러한 삶의 고단함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 확실하다.
이제 어린이는 개인이나 가정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어갈 '공공재'로 점점 인식되고 있다. 아
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개인 차원의 일에서 급속히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궁핍의 고통을 받는 집단을 해소하는 것이 고속도로를 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투자다. 문제
는 우리 사회가 이 엄연한 사실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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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8. 16 일자 국제신문에 실린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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