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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반일시위와 중국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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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광수 작성일05-04-25 18:49 조회4,3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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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젼] 반일시위와 중국의 딜레마

                            ** 조광수 [부산경실련 정책자문위원장 / 영산대 중국학과]

 
 
영화 '정무문'은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봐도 근사하다. 브루스 리의 역동적인 표정과 동작은 무술 영
화의 교본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일본이 상하이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이다. 주인공이 사부를 해
친 일본의 고수를 늘씬하게 패주는 등 강렬한 장면이 많지만 특히 인상적인 대목이 하나 있다. 일
본 조계지에 있는 공원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려있는데 주인공이 이단 옆차기
로 날려버리는 장면이다. 팻말을 부수고 착지한 주인공을 청년들이 우르르 에워싸서 보호해 준다.
최근 중국 전역에서 일고 있는 반일 시위를 보면서 먼저 떠오른 추억의 영화 한 장면이다.

사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우리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집요할지도 모른
다. 중국인들은 자신에게 모욕을 준 상대를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에 '10년 안에 원수를 갚으면 사나이로 쳐준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에게 갚음은 생활
이고 문화다. 사람살이의 기본이다.

중국은 일본이 동북 지역에 만주국을 세워 주권을 침탈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난징에서 저질
렀던 민간인 대량 학살을 잊지 않고 있다. 수교 때 지난 시절에 대한 물질적 보상은 받지 않겠다고
의연했지만 그 모욕과 고통을 잊은 것은 아니다. 절치부심, 중국은 경제 현대화에 전력했고, 작년
에 무역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중국은 이제 능력으로나 의지로나 갚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이 대목에서 일본의 역사 미화 사건이 또 터졌다. 분쟁 중인 해양 영토에 대한 영유권 행사도 구체
적으로 하고 나섰다. 미·일 동맹만 강화하면 된다는 치기 어린 행위에다 정직하게 과거를 성찰하
지 못하는 잔챙이 같은 언행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에 중국의 지도부와 민심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
고 있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중국의 현실로 볼 때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 과격 시위
가 전국 주요 지역에서 연일 계속되고 있다. 외교 공관이 파손된 것을 사과하라는 일본 외무장관에
게 중국 외무장관은 먼저 자신의 잘못부터 살피라고 훈계했을 뿐이다. 중국 정부가 작정을 하고 반
일 시위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반일 시위엔 '갚음'이라는 오랜 중국적 문화 외에 민족주의라는 깃발도 작용
하고 있어 문제가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다. 이른바 4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 체제는 전임 지도부
들과는 달리 조급한 시간과의 경쟁에 애쓰지 않아도 되고 이념 논쟁에 소모적이지 않아도 된다. 지
금처럼 안정 속의 성장만 지속하면 된다. 문제는 성장의 빛만큼 그늘도 커져가고 국민 통합을 위
한 강력한 깃발도 없어진 상황에서 안정과 질서를 도모할 뾰족한 수단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후진타오 체제가 찾아 낸 답은 민족이란 깃발이다. 국민 통합에 민족이란 구호를 이길 장
사는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발호하는 사회는 양날의 칼처럼 위험하다. 대내적 통합은 이루겠지만 언제든
대외적인 팽창주의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첫번째 위험이다.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동북공정이 그
예다.

두번째 위험은 중국 지도부가 바로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파급효과이다. 시위는 학습이다.
청년들이 명분 있는 구호 앞에 모여 시위를 하고 보람도 얻게 되면 점점 더 많은 문제에 대해 발언
하게 된다. 지금은 반일 시위이지만 다음에는 반공산당 시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중의 힘으로 혁명을 했던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민중을 가장 무서워한다. 마오쩌둥 같은 중국의
혁명 지도자들이 민중의 힘과 무서움을 확실히 느낀 것은 1919년 5·4 운동 때였다. 반일·반제국주
의라는 깃발 앞에 무수한 민중이 모였던 그 5·4 운동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분위기라면 반
일 시위는 5월4일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 중국 정부는 5·4 때만큼 무능하지도 않고 당장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시위의
즐거움과 명분을 확인한 민중들의 다음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반일
시위는 중국 지도부에게는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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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4. 21 일자 국제신문에 실린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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