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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일본과 독일의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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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석준 작성일05-02-20 14:05 조회5,5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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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일본과 독일의 역사인식

                                  ** 임석준 [부산경실련 기획위원 /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

 
싸움 잘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 우리 집에 들어왔다. 그는 살림살이를 모두 부수었고, 부
모님을 폭행했으며, 누이를 욕보였다. 이웃집 아저씨는 체포되었고 옥살이를 했다. 훗날 우리는 이
웃집과 화해를 했다. 그런데 우리를 황당하게 하는 것은 이웃집 아저씨의 만행에 대한 그 자식들
의 상반된 태도이다. 큰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 그는 대대로 내려
오는 조상님들의 고질적 술버릇 때문에 불상사가 일어났음을 인정하고 자식들에게 술을 멀리하도
록 가르친다. 하지만 둘째는 견해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조상님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분들이고 과
격한 성격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과음과 폭행은 우발적 실수였고 가문의 전통
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자식이 과거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이다. 큰 아
들은 독일의, 작은 아들은 일본국민의 역사 인식 방법이다.

올해는 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두 나라 정치 지도
자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가진 연설에서 눈물로
과거사를 진지하게 반성했다. 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A급 전범들을 군신으로 추앙하
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올해도 참배할 예정이다. 왜 한 사람은 스스로 허물을 벗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이고 다른 한쪽은 허물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는 걸까.

일본이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원자폭탄을 통해 전쟁의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기 때
문'이라는 설명에서부터 '맥아더가 전범 재판에 히로히토 일왕을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
명 등 다양하다. 그러나 필자는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 이유로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못나서, 특히
필자와 같이 학문하는 학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2차 대전 이후 유대인 학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해 나치체제에 대한 비판과 독일 역사쓰기에 전념했
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명저를 통해 독일 나
치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가했다. 아렌트를 위시한 유대인 학자들의 공통된
목적은 20세기에 등장한 독일 파시즘의 씨앗이 이미 18~19세기에 뿌려져 있었음을 밝히는 것이었
다. 그리하여 이들은 다음과 같은 '객관적' 독일 역사를 탄생시켰다. 독일은 농경사회에서 현대사
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와 같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공시키지 못하
였다. 그 이유는 독일의 자본가들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력한 토지귀족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해 자유를 포기하고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권리를 챙겼다. 이른바 '철과 호밀의 결혼'으로 표현
되는 지주와 자본가의 보수적 연합은 훗날 독일이 나치즘의 길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유대인 망명 학자들은 파시즘에 대한 '사회적 기원'을 탐색함으로써, 2차 대전은 히틀러 개인의 광
기가 아니라 독일 역사에 도도히 흐르는 반동의 산물임을 밝혔던 것이다.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쓰여 있는 유대인 학자들의 독일사 연구는 전 세계의 학자들로부터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유대인 학자들이 독일 역사를 객관화하는 작업에 몰두했다면 우리는 과연 일본사
에 대해서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일본을 감정적으로 미워했지, 일본 역사를 '객관화'할 수 있는 수
준의 학문적 업적을 남겼는가.

최근 국내에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역사 청산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모두 야단법석이다. 일본의
역사이건 혹은 우리의 역사이건, 과거는 빚을 갚듯이 시원하게 정치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만약 일본 총리가 내심으로 태평양 전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가 핏대 세우
고 열 내서 그의 신사 방문을 저지한다고 과거가 청산되는 것일까. 오히려 신사 참배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일본의 역사를 객관화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 청산일 것이다. 과거
는 정치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학자들의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오히려 계속 만들
어지는 대상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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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 17 일자 국제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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