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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에 희망걸기(박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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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부산경실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3-06-12 02:16 조회10,6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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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서 ---NGO에 대한 희망걸기--- 박상필(성공회대 NGO대학원) I. 머리말 인간이 각자 내적 동질성을 기초로 하여 결사체를 조직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 은 아마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저멀리 기원전(BC) 4세기 경,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반응에서 중간조직의 문헌적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개인 사이의 결사는 중 세 봉건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봉건체제 하에서 교회 조합 길드 등이 다양하게 결성되었 고, 개인들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획득하고 확대시켜 줄 결사체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에는 지 금 우리가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라고 부르는 조직도 있었을 것이다. NGO가 사회 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 근대국가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18 세기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와서야 그 중요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미국혁명은 한편으로는 영국 식민지정부의 독재와 착취에 대항하여 외국지배로부터 독립하려는 정치적 혁명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의 갑작스런 변화보다 기존의 봉건적 권위 의 무 종교 계급 재산으로부터 벗어나는, 근본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사회변혁 과정이었다 (Nisbet, 1990). 국가와 개인 사이를 중개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바로 각종 결사체였 다. 자발적 결사체는 국가의 권력집중을 방지하면서 개인의 열정을 흡수하여 사회변화를 추진하 는 매개체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미국혁명과는 달리 혁명의 주체들이 중간조직에 대 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을 통하여 개인은 단지 신민으로서 국가의 통치대 상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사회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절대체제 하에서 개인은 국가 에 복종하는 댓가로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았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국가와 개인 사이에 '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이 생기고, 개인들은 이 중간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를 외치며 국가권 력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도 사람들은 NGO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NGO라는 용어가 국 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유엔헌장에서 NGO의 개념이 공식 적으로 사용된 이후 아메리카에서 유럽까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NGO가 발생하였다. 오늘날 과연 NGO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이슈를 다루 는 NGO가 생겨나서, 국가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시민적 요구에 응답하고 있다. 미국과 같 이 국가의 역할확대에 대한 반감이 강하고 다양한 인종 언어 종교 문화로 이루어진 사회는 말 할 것도 없고, 유럽과 같이 전통적으로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에서도 많은 NGO가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과 같은 복지국가에서도 인구 28만 명의 작은 도시에 NGO가 2,800개 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국가에서도 지역경제개발을 촉진하 고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각종 인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많은 NGO가 생겨나 고 있다. 한국은 NGO의 분출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지난 15년간 1만 개가 넘는 크고 작은 NGO가 결성되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거의 수백 수천만 개에 달하는 NGO가 활동하고 있다. 시장이 자유방임 의 상태에서 소유적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끝없이 부를 축적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여 명령과 강제를 통하여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도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대사회는 권력 의 분화를 통하여 시민참여를 확대하고 행위자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상호 협력하는 시대이 다. 다양한 행위자의 참여보장과 공론장의 확대만이 다원적 가치를 보존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성장이 국가공동체의 발전에 중요한 변수로 등 장하였다. 시민사회에 토대를 두고 있는 NGO는 지방적 국가적 지역적 지구적 차원에서 참여 와 연대의 전략을 통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적 가치를 보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NGO 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의 다양한 이슈를 정치화시키는 시민운동을 이끌어가는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NGO는 인류문명의 진보를 약속하는 소중한 사회제도로서 보다 나은 문명을 향하 여 사회변혁을 담당하는 위대한 담지자로 부상하였다. 이 글은 대안문명을 창출해가는 NGO의 역할에 주목하여 유토피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부침 을 거듭해왔고, 오늘날 새로운 유토피아의 부활에서 NGO가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는 대의민주주의를 대체 보완하여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정 치적 기획에 제한하기로 한다. 유토피아라는 개념은 보통 More나 마르크스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 이 실현될 수 없거나 비과학적인 미래상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토피아가 계급투쟁 에 제동을 거는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실질적인 근거가 부족한 잡동사니라고 혹평하였다. 그러 나 Mannheim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구분하여 이데올로기를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유토피 아를 실현가능한 것으로 보았다(전태국, 1997: 161; Jacoby, 2000: 45). 그리고 Bloch(1995)는 마 르크스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의 대립상을 거부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유토 피아의 완성으로 보았다. Monod(2003)는 스스로 유토피아주의자라고 하면서 유토피아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사회변동과 사회개혁의 기초를 제공하는 요소로서 이상적이고 총체적인 사회질서의 실현을 함축하는 미래사회, 또는 그 에 대한 인간적 상상력을 말한다. 그 실현가능성 여부는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II. 유토피아의 쇠퇴 1. 유토피아의 소멸 인간은 오랫동안 유토피아의 시대를 살아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풍요롭 고 평화로운 낙원이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지녀왔고, 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신화나 설화 형식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희랍신화의 아카디아 유토피아(arcadian utopia)는 물질적 풍요, 인 간상호간의 융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편안한 죽음 등으로 묘사되는 극치의 낙원이었다(Davis, 1981: 19-26).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류사회의 시원인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과 미래의 천 년왕국(The Millenium)은 풍요와 평화가 있고 고통과 원망이 없는 파라다이스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상사회는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기적처럼 도래하고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설적 신화적 종교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박호강, 2002: 22-23). 신화적 추상적 유토피아의 원초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실현가능한 목표와 달성방법을 가진 보 다 구체적인 유토피아가 문학, 정치철학, 사회이론 등 여러 형식으로 나타났다. 일찌기 기원전 4세 기경 서구문명의 발아기에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적인 정 치공동체인 도시국가(polis)를 제시하였다(Palto, 1994).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실현가능성이 희박 하다는 점에서 초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초월적 질서가 아닌 인간사회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적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16세기 초 르네상스시대에 More(2002)는 이상적인 섬나라 와 이상적인 도시 아모로툼(Amaurotum)을 통하여 화폐, 전쟁, 불평등이 없는 유토피아를 그렸 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 당시 영국사회의 부조리와 반휴머니즘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근거하 여 이상국가의 사회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과거의 다른 작품보다 뛰 어나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래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인간의 삶을 완전하게 성취 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전망하였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유행했던 Andreae의 <크리스치아노폴리 스>(The Christianopolis),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New Atlantis), Campanella의 <태양의 도 시>(The City of the Sun) 등을 들 수 있다(박호강, 2002: 25). 18세기에 와서는 유토피아가 과거 의 일정한 단계를 거쳐 미래로 발전해 간다는 역사유토피아(history utopia)가 등장하였다. Condorcet(2002)의 유토피아론이 대표적이다. 그는 인류역사를 10단계로 구분하고 다가올 미래 의 10단계에서 과학의 진보와 도덕의 향상을 통하여 행복의 증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최후의 발달단계는 부의 평등, 교육의 평등, 미신의 파괴, 전쟁없는 평화가 보장되는 아름다운 사회로 특 징지어진다. Condorcet는 인간을 지적 도덕적 신체적 완전성을 가진 존재로 가정하고 교육과 정치적 수단을 통한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의 유토피아는 추상적 종교적 유토피아를 벗어나 과학과 지식의 진보, 그리고 역사적 변동을 통하여 실제의 행복한 도시를 추구하는 사회적 유토피아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유토피아사상은 동양에서도 이상사회를 향한 열망으로 나타났다. 공자의 유교사상은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관계의 조화에 근거하여 인간성의 완전한 실현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였다. 유 교적 유토피아는 규범체계로서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인간심성으로서의 오상(五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덕성, 자기수양, 인간결합에 의한 이상적 사회이다. 가정은 그대로 국가로 확장되 고, 인간적 덕성과 사회적 덕목이 질서있게 상호 결합한다. 치자는 덕(德)을 가지고 덕치를 행하 고 이에 따라 정치적인 평형과 안정이 온다. 이러한 유토피아는 내세가 아니라 바로 현세에서 국리 민복(國利民福)을 얻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근대 이래로 유토피아가 특정한 사고형태로서 구체적인 내용과 가치를 가지게 되고, 인간이 유토 피아를 생활 속에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된 것은 역시 마르크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 의 존재가 부정될 때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꿈을 역사의 보편적 법칙 을 통하여 제시하려고 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비판 하고 실현가능한 과학적 사회주의를 제시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에 의하면, Saint- Simon, Fourier, Owen 등이 제창한 공상적 사회주의가 기존 사회의 모든 원칙을 공격하고 노동계 급의 계몽을 위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산업발전의 조건이 미약한 관계로 계급투쟁이 나 타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역사적 창의성이나 독자적 정치운동을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 서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 부르주아의 자비에 호소하게 되고, 정치적 행동이나 혁명적인 수 단을 거부한다. 결국은 그들의 제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계급투쟁을 통한 역사진보에 반동적인 성 격을 띠게 되고, 변동의 내재적 요인이나 실현가능한 수단이 없는 공상적 한계로 인하여 필연적으 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Marx and Engels, 1989: 143-49). 마르크스는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19세기에 산업혁명에 의해 노정된 불안정과 갈등을 해소 하기 위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제창하였다. 그는 Hegel과 Feuerbach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결합 한 변증법적 유물론과 경제결정론적 유물사관에 근거하여 인류역사가 일정한 객관적 법칙에 따라 고차원적 사회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발전의 5단계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산 업발전과 부르주아혁명에 의하여 탄생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본질적으로 내적 모순을 갖고 있 다.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착취하게 되고, 노동자는 빈곤과 소외가 늘어 남에 따라 계급의식을 가지고 단결하게 된다.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의 주체성을 가지고 혁명을 통하여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유재산을 사회화하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게 된다. 사회주의는 프롤 레타리아의 독재를 통하여 다른 계급이 소멸하고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면 사유재산, 착취, 소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더 이상 변증법적으로 발전할 내부 모순이 없는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역사 의 최종단계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역사의 전반적인 방향과 변 화법칙을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의 방법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많은 비판을 받았다(노병철 외, 2000).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대사회의 복합성을 자본주의의 경제과정으로 환 원시킨 경제환원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미래를 계획하는 사회공학을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합리적인 계획에 따른 전체로서의 사회 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라 발전한다고 보는 역사주의를 옹호하 였다(Popper, 1999b: 281-84). 그러나 Popper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 역사주의가 전체론적 접 근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신중섭, 1999: 177). 따라서 Popper는 마르크스 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오히려 합리성이 결여된 유토피아주의라고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마르크 스의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폭력을 수반하고 비용이 높기 때문에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는 것이다. Popper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합리적인 접근인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engineering)을 제시한다(Popper, 1999a: 219-25). Giddens도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법칙을 비판한다. 그에게 역사는 진보적인 사회변동을 보장해 주지 않으며, 역사에 어떤 필연적인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역사는 목적론적인 것이 아니 며 역사진보에서 가치실현을 담당하는 특권적인 대행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지 배계급의 이익은 항상 총체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상충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변동의 많은 부분 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변동에 있어서 제도적으로 내재하는 요인이 중요하다는 마르스크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일상의 위험은 도덕적 신념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행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유토피아적 이상과 현실주의 사 이의 균형을 강조하고, 해방의 정치가 자아실현의 정치와 연계될 것을 제안한다(Giddens, 1991: 160-61; Tucker Jr., 1999: 22).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공산주의는 현실적용에 있어서 스탈린의 공 포정치, 강제수용소의 비극, 동구유럽국가에 대한 무력탄압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인류에 게 커다란 재앙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Fukuyama(1992)가 주장하듯이 소련을 포함한 동구유럽의 현실사회주의가 1989년 이후 멸망함에 따라 역사의 최종점으로서 자유민주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이로써 역사적이든, 공학적이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인간의 잠재력을 최고로 발현하는 미래사회를 설계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사상은 일단락되고 말았다. 한편, 동양의 유교적 이상사회는 16세기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되고 18세기 이후 아시아 의 각국이 유럽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서양의 과학주의에 대한 상대적 열등감으로 동양적 유 토피아의 전망도 쇠퇴하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에 의한 구원과는 별도로,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함으로써 자연에 대 한 기술적 계획을 통하여 황금시대(the Golden Age)를 재현하고자 하는 기술유토피아가 일어났 다. 기술유토피아는 일찍이 베이컨이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자연 속에 안주하는 고대의 관념을 포기하고,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자연을 지배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근대 자연과학사상까지 거 슬러 올라간다. 근대사회 이래로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인간사회를 변 혁하고자 하는 사고가 보편화되었다. 중세의 암흑기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르네상스 이후 16-17 세기의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사회진보의 토양이 다져지고, 이것이 18세기의 산업혁명과 19세기 의 과학시대로 연결됨에 따라 과학기술을 통한 완전한 사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Comte의 실증주의 유토피아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오면 미국의 역사적인 발달에 서 보는 바와 같이, 인간은 기술혁신을 통하여 미래를 구체적으로 전망하고 자유의 확대와 복지의 증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Bellamy의 산업기술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이다. 그는 <되돌아보며>(Looking Backward 2000-1887)라는 소설에서 산업기술의 발달을 통하여 국가 를 매개로 자유 평등 우애가 실현되고, 이기주의 폭력 사기가 없는 완전한 사회가 가능하다 는 것을 제시하였다(Bellamy, 1951).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이 초래할 위험을 인식하게 되면서 Orwell의 <1984년>, Huxley의 <멋 진 신세계>,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의 <인류의 위기> 등과 같은 디스토피아(dystopia) 작 품이 나타났다(Orwell, 1984; Huxley, 1989; Meadows, et al., 1972). 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인 간의 감시와 통제, 자발성과 창의성의 억압, 기술에 의한 인간의 종속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결함 있는 사회'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환경파괴, 도덕과 예술의 기술 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테러집단의 조직화, 기술관료주의의 독재, 도시의 밀집과 범죄 등을 생 각한다면 기술유토피아도 그 유용성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2. 미래에 대한 믿음의 붕괴 여러 형태의 유토피아가 실패로 돌아가자 풍요롭고 평등한 삶,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삶,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삶에 대한 인류의 희망은 꺼지고 말았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자유 주의와 자본주의가 전세계에 걸쳐 보편화되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이념간 상극과 세력간 갈등을 겪고 있다. 고도의 기술발달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문제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 이 지속되고 있다. 1960년 Bell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선언했을 때, 세계는 동서간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Bell은 마르크스주의의 신념체계가 설득력을 잃었다고 보았다. 제2차 세계대 전 이후 서구사회는 벌써 후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에 접어들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 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현상이 나타났다. 의료보장, 지방자치, 시민권 리, 페미니즘, 생태환경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와 문제가 등장하였다(Bell, 1984). 이러한 문제와 씨름하기 위하여 수정자본주의와 복지국가가 등장하였고, 권력분산을 기조로 한 통치체제의 변화 가 일어났다. 그리고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과 개인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집단적인 저항이 이어졌 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에서 거대한 혁명적 운동으로 번졌던 1968년 5월운동을 들 수 있 다. 이후 30년여 년이 지나서 Fukuyama(1992)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였다. 서구사회와 소련 사 이의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간의 대결은 자유주의의 승리로 종결되고, 역사는 이제 이데올로기의 진 화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역사는 더 이상의 이데올로기 대립없이 서 구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해 움직일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탈역사'(post-history)의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는 단일한 자본주의체제로 통합되었다. 1991년 걸프전쟁(Gulf war) 이후 뚜렷하게 드러나는 바와 같이, 세계질서의 재편은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은 독과점과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지구화를 촉진 하였다. 그래서 세계는 포드주의의 축적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체제를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고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Fukuyama(1992)의 말처럼 그 결과는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처럼 탈역사의 단계에 들어선 국가에게만 돌아간다. 제3세계 국가는 선진국과의 경제적 격차 와 자국내 개인간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도처에 피비린내 나는 종족 인종 종교 갈등과 전쟁 을 경험하고 있다. 바로 서구의 시각에서 제3세계의 발전곡선을 만들고 갈등해결의 전략을 도입하 기 때문이다. 분쟁조정에 대한 서구의 잣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과 불개입, 무력사용과 평화적 해결 수단을 선택적으로 집어든다는 점에서 정의롭지도 못하다. 소련과 동구유럽의 붕괴 이후의 상황에 대하여 Wallerstein(1996)은 Fukuyama와는 상반되는 이 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1989년 이후 소련과 동구유럽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자유주의의 붕괴 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와 공생패키지를 이루고 있었던 자유주의는 국가발전의 전략으로서 자 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뒷받침해 주는 동반자를 잃고 표류하게 되었다. 이제 자유주의에 거대한 균 열이 드러나고 몰락의 징후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자유주의는 1789년 등장 이후 지배이데 올로기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지만 1968년 이후, 그리고 1989년 이후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 작하였다.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유주의의 위기는 주기적 순환(cycle)이 아니라 장기적 추세 (trend)로서 내적 변형과 자체의 소멸을 낳는 구조적 긴장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Wallerstein, 1994). 자유주의는 이성 경험 실험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기존의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전통을 비판하 고 재구성해가는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Bell, 1992). 사회주의의 멸망 이후 자유주의는 고유의 급진성을 잃고 상업성과 물신성에 도취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상업광고의 범람이다. Fromm(1988: 247)은 상업광고가 비판적인 사고와 정서적 자주성을 무력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자 유주의는 자신을 세련시키고 자신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던 환경이 무너지면서 상상력이 빈약 한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있다. 현실을 회의하고 불가능한 것을 탐구하는 정신이 없 으면 이데올로기는 녹슬고만다. 굳이 Wallerstein의 주장을 빌어 자유주의 몰락을 예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지금 불안과 혼 란의 와중에 있다. 1940년대에 참혹한 세계대전을 경험한 서구사회는 곧바로 경제부흥에 나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거대한 경제발전을 성취하였다.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불평등의 해소를 동 시에 가능하게 하는 체제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안락하고 평화로울 것으로 믿었다. 심지어 세계의 모든 사람이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하 여 낙관적이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노동자도 주택, 자동차, 텔레비전, 영화관람 등과 같은 높은 문화생활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 심각한 쇠퇴를 경험하였 고, 국가와 자본과 노동간의 화해적 정치구조로 간주되었던 복지국가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빈부 격차는 더 심해져서 미국의 경우, 1990년대에 비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1970년대의 그것에 미 치지 못하고, 상위 20%의 소득과 하위 20%의 소득 격차가 20여년 전의 6대 1에서 12대 1로 벌어졌 다. 그야말로 인구의 20%만이 좋은 일자리와 문화생활을 즐기고 나머지 80%는 실업, 임시직, 저임 금, 무주택으로 불안하고 빈곤한 생활을 하는 '20대 80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심각한 환경문제 는 오존층의 파괴, 이상기온 현상, 생태계 파괴, 공해병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서간의 이데올로 기냉전이 끝났지만, 국지전과 국가 내의 분쟁이 격화되었다. Jacoby(2000: 225)는 냉전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승리가 전세계에 암울한 미래를 선물하고 있다 고 극단적으로 말한다. 보수주의자가 외치는 것처럼 더 이상의 갈등과 진화가 없는 선명한 미래가 아니라,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서로 얽혀 있어서 전망이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물적 풍요를 가져오긴 했지만, 억압 불평등 착취와 같 은 근대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생태파괴, 부정부패, 관료적 획일성과 경직성, 인 종갈등, 테러와 폭력 등과 같은 문제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거나 실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동종(同種)의 근대계몽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김성국(1996)은 사회주의의 계획사회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경쟁사회의 신화가 착취와 억압의 메카니즘에 불과하다고 인 식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 주요한 이데올로기는 이제 과학과 기술이다. 물론 이것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에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외가 아니다. Habermas는 기술을 현대사회의 숨겨진 이데올로 기라고 했지만, 오늘날 기술은 인간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에 관여하는 공개된 핵심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빈곤의 문제도, 혼란의 문제도, 나아가 타국지배와 세계제패도 과학기술 발달에 의 존하고 있다. 기술이 범죄, 마약, 빈곤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Bell, 1991), 범죄방지, 재분배, 관료주의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 을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문명화된 국가의 정권은 출범과 함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방편으로 과학기술 발달을 주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한다. 과학기술은 녹색혁명을 통하여 Malthus의 "인구 론"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빈곤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였다.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달은 "수소혁 명"(Rifkin, 2003)을 통하여 자원부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유전공학의 발달을 통해 중국 진시황 제 시대부터 전설적으로 전해오던 불로초(不老草)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도덕적 윤리적 평가에 있어서 반드시 긍 정적이지 않다. 과학자는 과학발달의 방향에 대해서 커다란 관심과 책임을 갖지 않으며, 인간의 존 엄과 인류의 복리를 위하여 복무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히틀러의 등장과 만행에서 볼 수 있 는 바와 같이, 과거에 과학기술의 발달은 전체주의국가를 형성하여 유대인과 같은 한 민족을 송두 리째 제거하겠다는 기획에 공헌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아프가니스탄전쟁(2001년)과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2003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과학기술의 발달은 지하 저 밑에 숨어 있는 사 람까지 살상하면서 대량학살에 기여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은 소비지향적 생활, 경제 적 이기주의, 환경파괴로 이어지고 공연이 끝난 뒤에 느끼는 일종의 공허감을 남긴다. 기술의 발달 로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퍼지는 최첨단 집에서 깨어나 노동의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는 있지만, 그 것은 소수 부자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부자의 해방감과 만족감도 다른 사람이 그러하 지 못할 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로 인하여 자신을 폐쇄시키고 사회적 관계를 퇴보시 켜 오히려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게 된다. 과학기술이 발달되고 있어도 내일이 오늘보다 경제적으 로 더 풍요하고,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업의 증가, 전세계적 빈곤벨트, 가공할 군사무기 등이 이같은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우리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현대사회의 개인은 수백년 전에 왕이 누렸던 편리에 버금가는 생활과 지식소유를 자 랑하고 있다. 그러나 Marcuse(1986)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사회변동의 가능성이 봉쇄되고 단 지 효율적인 목표달성만을 중시하는 현대산업사회를 "일차원적 사회"(one dimensional society) 로 규정한다. 일차원적 사회에서는 획일성과 순응이 강조되는 반면, 개인의 자유는 훼손되고 인간 소외를 극복하지 못한다. 과학과 기술이 가진 계급이해에 대한 논쟁을 떠나서 기술만능은 인간을 기술에 종속시켜 지배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생명의 총체성이나 근원성에 대한 이해없이 기술이 가져오는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은 독가스와 핵무기의 교훈이 가르쳐 주듯이 불행을 초래한다. III. 유토피아의 부활 1. 유토피아의 기능 현체제에 안주하여 유토피아를 비웃는 사람들은 눈 앞의 생활을 중시한다. 그들은 효율성을 극대 화하기 위하여 관료적 행동에 젖어 있고 안전을 위한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보내고 대량학살을 주도했던 Erchmann도 특별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 한 사람의 충실한 관료였다.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 이 부족한 사람은 순응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이들은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거나 자신의 출세에 안달한다. 지적 혁명을 꾀하기보다는 현체제에 순응하여 그 체제 속에 스스로 함몰되어 버린다. 현실적인 요구에만 집착하여 인간존엄과 잠재력에 대한 상상력을 폐쇄시 키는 것은 자아절대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는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 적 상상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인간사회의 현실은 언제나 악으로 가득차 있고 무수한 모순이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완전한 미래사회를 꿈꾼다. 인간은 단지 동물과 같이 물질적 풍요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 풍족할 때나, 빈곤할 때나, 자신의 주체적 실존에 대한 물음과 함께 인간정신의 완전한 자유를 성취하려고 노력 한다. 니체는 이상적인 삶을 구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행위를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 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권력이란 정치권력이나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모든 정체된 상태를 돌파하여 향상하려는 근원적인 내적 생명력을 말한다(工藤綏夫, 1987: 162). 확실히 인간에게는 현실적 한계를 벗어나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약동과 향상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실천의지를 가지고 있다. 유토피아 관념은 바로 현실적 고통을 뛰어 넘어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의 욕구와 희망을 구체화시 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Touraine(1981: 19)은 유토피아사상을 사회문화적 변화과정에서 하나의 필수적인 단계로 보았다. Mills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을 결집시키는 원 동력이라고 하면서, 제도나 정책을 고려하기 이전에 먼저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Jacoby, 2000: 18). Frankel(1997: 42)은 유토피아 전통이 일상적 삶의 불합리성과 황폐화에 대 한 진부하고 체념적인 수용을 거부하고 활기찬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데 공감을 표시하였 다. 미래에 대한 상상없이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서 유토피아는 현재생활에서 충일한 삶을 지향하도록 만든다. 유토피아사상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한다. 인간의 모든 사고가 당대의 전반적 사회질서와 가치체계를 반영하듯이, 유토피아사상은 그 시대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유토피아사 상은 현실사회의 억압, 불평등, 착취, 소외 등 각종 사회적 불만과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하여 현실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물론 유토피아사 상은 단순히 현실을 비판하거나 개혁하고자 하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실비판과 개혁의 지를 넘어 문제해결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진보적 가치를 대변하고 인간의 새로운 가능 성을 표출해준다. 따라서 유토피아사상은 완전한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을 일깨워 모든 가능 성을 열어 놓고 새로운 발명을 하도록 자극한다. 그리고 일상적 삶을 결코 경시하지 않으면서 미래 의 가능성을 전망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다. 현재적 삶이 의미있는 삶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가 있을 때 더욱 높아진다. 2. 유토피아의 부활 인간은 현실생활이 고통스럽고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를 만들어냈 다. 따라서 인류역사에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실을 비판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 계획하는 다양한 형태의 유토피아 관념이 끊임없이 등장하였다. 중세의 경직되고 비관적인 암흑기에 나타 난 르네상스의 문예부흥을 예로 들 수 있다. 베이컨의 경험주의, 과학중시, 지식의 유용성에 대한 주장과 데카르트의 이성과 자연법칙에 대한 강조가 인간에 의한 사회진보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 다. 유토피아가 당대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여 미래에 대한 기획으로서 보다 현실성을 갖게 된 것은 역시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근대 유토피아는 바로 과 학적 지식을 통하여 인간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시 대에 이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낳았다. 유토피아는 근대성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종교적 근본주의와 복고적 전통주의에 연결되기도 하 였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사회로서의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20세기에 공산주의 이론이 현 실에서 독재와 공포정치로 변질되자 유토피아는 신좌파에 의해 부활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신좌 파운동은 현실사회주의의 독재, 경직성, 비인간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 관료주의, 권력집중, 군사 문화를 비판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정의, 평등, 소외극복의 대안으로서 참여민주주의와 공동체운동 을 지향하였다. 1960년대 미국의 신좌파운동은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 반전운동에 접목되어 사회 변화의 격렬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김봉종, 2001). 유럽에서 신좌파는 1968년 5월운동에서 나타 난 바와 같이, 관료제도의 위계적 권위주의와 기술관료의 의사결정 독점에 반대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과 자기정체성을 요구하였다. 물질적 행복을 넘어선 자아실현은 자율 분권 참여와 같은 가 치의 실현이 필요하였다(정수복, 1994: 229-58). 신좌파운동은 완전한 사회를 지향하여 기존의 자 유주의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혁명적인 성격이 빠져버린 자유주의는 소수 특권층이 힘 없는 다수를 체제 밖으로 몰아내고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보수주의로 변하였다. 정치는 소수의 독 점물로서 형해화되고, 개인은 파편화되거나 방관자로 전락하여 소외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국 가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제와 정형화된 삶에 대한 반발로 자율과 자치가 보장되는 사회에 대한 요 구가 일어났던 것이다. 1960년대의 열기가 사그러들고 현실사회주의가 멸망한 지금 유토피아의 꿈은 먼 옛날의 일이나 비현실적인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Jacoby(2000: 226)는 지금 세계인을 추동하는 이상 에 유토피아는 없고 당면한 문제를 치유하는 정책과 프로그램밖에 없다고 투덜댄다. Touraine (1994)은 현대사회는 기술관료가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문화적 상품이 개 인적 일상을 점유하는 "프로그램화된 사회"(programmed society)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경 제적 풍요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국가중심체제는 개인의 창의성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소비주 의는 인간성과 환경을 파괴하여 정신적 빈곤을 낳는다. 국가에 대한 순응과 획일적 발전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게 된다. 따라서 현체제에서 약간의 개선을 위한 기회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 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잠재력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완전한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 사상이 필요하다. 오늘날 새로운 유토피아는 시민사회의 성장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근대국가의 성립 이후 국가 는 발전의 기획을 담당하여 진보를 책임져 왔다. 국가는 거시경제를 조절하고 복지서비스를 제공 하며 소득재분배를 위한 매개역할을 수행하였다. 심지어 산업구조를 조정하고 지식경제를 위한 기 반을 구축하는 작업을 선도적으로 지도하였다. 그러나 국가는 관료주의 경직성과 대외변동에 대 한 적응능력의 한계를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더구나 권력의 집중, 권위주의, 부정부패, 효 율성의 추락 등으로 인하여 정당성마저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거나 개혁을 완수하는 적임자가 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 이후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시장은 국가관료제에 의한 경직된 구조에 비해서는 개인적 창의를 존중하고 효율적으로 상 품과 서비스를 생산한다. 경쟁과 실적주의에 대한 강조를 통하여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다. 그러 나 시장은 구조적으로 공공재를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산출하고 기회주 의적 이윤추구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환경을 파괴하고 시민적 규범을 훼손하게 된다.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로 인한 대안적 체제에 대한 전망은 자발적 참여, 권력의 분산과 공유, 신축 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조밀하고 공개된 커뮤니케이션, 사회적 책임과 연대, 세계시민적 윤리 등 과 같은 요소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소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발달과 NGO의 역할을 요구한다. 시민사회는 권력에 의해서 작동되는 국가나 화폐에 의해서 움직이는 시장과는 달리, 자율 참여 연대의 동학 속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의사소통이 활발하고 수평적 커뮤니케이 션이 가능하다. 상호존중과 친밀감이 강하고 공동체적 문화가 중시된다. 상호 협력하고 연대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자원적(voluntary) 활동이 활발하다. 물 질적 욕망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탐사와 놀이가 이루어진다. 상호원조, 공동체정신, 인간적 교류, 환경보호 등과 같은 가치가 중시되는 영역이다. 물론 시민사회는 근대사회에서 태생할 때부터 국 가와 시장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주요한 기능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적 패러다임에서는 해방의 정치를 넘어 자아실현의 정치도 가능하다. 21세기 유토피아의 부활은 시민사회를 대변하 는 NGO의 폭발과 NGO가 주체가 되어 추진하는 시민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NGO의 활성화 에 따른 유토피아의 전망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계획에 의한 경험처럼 억압적 수단을 갖지 않는다 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IV. 새로운 민주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산업사회와는 다른 사회이다. 서비스업이 증가하고, 지식과 정보 가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하며, 전문지식인의 영향력이 커진 사회이다.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네트 워크가 형성되어 그야말로 지구촌이 건설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권의 강조, 자아실현적 가치의 중 시, 자율성과 다원성의 확대, 조직의 네트워크화와 수평화, 세계시민적 윤리와 연대 등에서 볼 때, 산업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역사가 Hobsbawm의 말처럼, 단순히 역사반복의 주기적 변화가 아니라 과거에 없었던 거대한 질적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현대사회는 자율성 다원 성 복잡성을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개인은 자율성을 중시하고,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며, 삶의 질 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다원적 가치가 전반적으로 통용되며, 삶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 색은 결국 어떠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와 운영방식을 논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현 실적용에서 문제를 노정한 이후, 현존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 도이다. 이러한 시도 중의 하나는 민주주의의 원시적 이상을 급진적으로 부활시키는 정치기획에 닿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변형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형태의 현실문제에 부딪히게 되지만, 인간 의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존하는 체제를 회의하고 과학적 탐구를 통하여 새로운 체제를 전망한다는 것은 곧 삶이 건강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도가 NGO의 부상 및 역할과 일정한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현실사회주의가 멸망한 지금 민주주의라고 하면 곧 자유민주주의를 연상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하여 탄생하였지만, 자체 내부에 화해할 수 없는 대립과 모순을 가지 고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자유주의와 함께 봉건제적 사회질서와 절대체제의 권력독점에 대한 저 항과 투쟁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자본주의 내에서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 한 투쟁으로 성립한 계급적 이념인데 반하여, 민주주의는 근대사회 이후 정부의 결정과정에 참여 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시민사 회 내부의 계급대립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긴장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주의를 자유주의로 환원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지니고 있 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회피하고 민주주의가 원래 지향했던 평등의 문제를 은폐하려는 의도 가 내재되어 있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여 양자의 관계를 민주주의 대 독재의 이항관계로 설정하려는 의도 또한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인민에 의한 지배'(rule by the people) 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인민의 평등한 참 여와 인민에 의한 지배를 부정하고 엘리트민주주의로 귀결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엘리트민 주주의는 정치를 제도영역으로 협소화시키고 대중을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 기존의 지배 구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박동택, 1992; 박주원, 1992; 이광일, 2002).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을 축소하여 정부영역 내의 민주적 원칙과 절차에 관 심을 집중하였다. 따라서 Held(1988: 315)가 주장하듯이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적 권리와 실질적 권 리간의 관계, 시민적 자유와 평등에 대한 원칙과 현실과의 괴리, 원칙상의 독립적인 국가의 위치 와 현실상의 불평등에 기여하는 국가의 개입, 국가와 사회를 연결하는 구조로 제시된 정당의 존재 와 실질적인 영향력의 한계, 정부활동으로서의 정치개념과 실제적으로 이를 부정하는 권력관계 등 에 대하여 제대로 고찰하지 못하였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권력을 다원화 하는 문제, 시민참여를 확대하여 정책과정에 평등한 참여기회를 보장하고 공론장을 활성화하는 문 제, 개인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창조적 개성을 증진하는 문제에 대하여 유효한 질문을 던지거나 적 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출발당시에 의도했 던 원시성이 쇠락하여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서 강조했던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화'가 불 가능하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의제에서 잘 나타난다. 대의 민주주의는 현대사회의 복합성이 가지는 문제를 일정부분 해결하고, 대중통제 및 정치평등에 대 한 요구와 시간적 긴급성 및 근대 영토국가의 조건을 화해시킬 수 있는 장치로서 효과성이 있는 것 이 사실이다(Beetham, 1993; Melucci, 1991). Bobbio(1989)는 현실정치에서 실천상 많은 장애가 있는 참여민주주의보다는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법지배의 철저화를 통하여 대의민주주의를 활성 화 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는 의도와는 달리 국가, 특히 중앙정부에 권력을 집중하 고 정책과정에 대한 시민참여를 제한하였고, 이질적인 사회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공론장 과 정보공개를 소홀히 하였다. 따라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 한 구성원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일반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방관자가 되었다. 그 대신 소 수의 전문기술관료나 대표자가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에서 결정을 독점하고 명령과 제재와 같은 방식을 통하여 시민의 복종을 강요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사익지향적이거나 정략적인 이해관계 에 따라 행동하는 대표자를 견제하거나 소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제한된 토론만을 실시한 후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소수의 순응을 강제함으로써 '다수의 독재'를 초래할 수 있다(박 상필, 2002a: 245-55).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로 인하여 현실민주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가 어렵 다. 활발한 토론을 통하여 특수이익을 제어하고 공공선(public good)을 증진할 수 있는 기회가 빈 약하다. 이 속에서 사적 이익추구에 골몰하는 정태적 인간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의 업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을 양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제한된 토론 과 참여로 인하여 개인간 또는 조직간의 신뢰, 협동, 공동체정신 등과 같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또한 국가와 사회의 구분에 근거한 국가중심의 획일적 통치 와 관료제를 통한 공공서비스의 생산은 다양한 통치행위자의 참여와 행위자간의 책임과 권위의 공 유를 지향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어렵게 한다. 이로 인하여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이래로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로 전해오는 자율, 참여, 평등, 다원적 가치를 실현하기 가 어렵다. 개인이 자기입법의 실천에 평등하게 참여하여 권력의 정당성과 자기결정원리를 확보한 다는 이상은 형해화된 화석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권력의 집중, 테크노크라 트의 지배, 참여통로와 공론장의 제한, 집단적 특수이익, 정치적 무관심, 시민의식의 저하 등으로 인하여 민주주의는 급진성을 상실하였다. 2. 민주주의의 급진화 역사 속에서 급진적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은 무수하게 전개되었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이후 에 프랑스에서는 일단의 여성지도자들이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여성참정권을 주장하였다. 비록 Mericourt와 Gourges와 같은 여성혁명가의 꿈은 깨지고 말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나중에 전 세계 여성에게 빛을 비추게 되었다. 183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차아티스트(Chartist)운동은 노동자 의 선거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1850년대에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영국의 선 거법개정에 영향을 미쳐 20세기에 와서 완전한 보통선거권의 정착에 기여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 산업자본주의에 기인하는 부와 권력의 집중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서 계 급적 특권을 적대로 간주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인간해방을 성취하지는 못했 지만, 자본주의를 새롭게 단련시키고 일정한 수정을 가하는 데 기여하였다. 20세기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기존의 남성과 노동의 중심성에 도전하여 여성의 인간성과 사회성을 강조하였다. 페미니즘 은 오늘날 인간의 잠재력 계발과 문명발전을 위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의제, 책임, 프라이버시, 재산, 착취, 결핍 등에 관한 고전적인 철 학논쟁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Smith의 <국부론>, Mill의 <자유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레닌 의 <국가와 혁명>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Bowles and Gintis, 1994: 34). 또한 새로 운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등장배경인 절대주의국가의 전제적 지배자에 대한 대응과 마르크스주 의의 등장배경인 산업자본주의에서 계급적 특권에 대한 대응과 같은 전통적인 정치논쟁을 뛰어 넘 는 것이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국가와 계급을 넘는 각종 인간적 가치와 의무, 인간과 자연과의 공 생관계, 초월적 영성과 문명전환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민주주의의 원시적 정신은 민주주의란 용어가 어떻게 발생하고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면 파악할 수 있다. 민주주의(democracy)는 16세기 프랑스어의 democratie에서 차용된 것이지 만, 그 이전에 그리스어의 demokratia에서 파생된 말로 인민(demos)와 지배(kratos)의 합성어이 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군주제나 귀족제와는 달리, 인민이 지배하는 정부형태를 말한다(Held, 1988: 10). 민주주의의 원시적 정신은 Pateman(1985)이 지적한 바대로 현실사회에서 실현하는 것 이 쉽지 않지만, 그 기본규범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지향하는 창조적 삶은 바로 원시적 민주주의를 향한 도전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원래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을 통하여 미래에 완성해야 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은 다음 몇 가지 명제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이다. 이것은 인민주권의 원리에 충실하여 모든 국가권력이 인민으로부터 발생하고 인민의 동의 에 근거해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둘째, 자기결정원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치자 와 피치자의 동일성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 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정치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정치는 정부활동에 제한되거나 사적 이해관 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주제를 포괄하고, 활발한 토론을 위한 열린 공론장이 갖추어져야 한다. 넷째, 시민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모든 시민은 공중으로서의 자질과 덕 성을 가지고 참여정신 비판정신 공익정신과 같은 시민성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시민이 자기권 리를 인식함과 아울러 자기성찰과 시민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민주 주의의 기본이념이 보장될 때 국가권력은 견제받고 다원화되고, 시민참여는 평등하고 유효하게 이 루어지며, 시민정신이 최대한 계발되고 실천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민주주의의 급진화는 국민국 가의 경계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 의의 급진화는 정보화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급진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복지국가의 확대, 자유주의원리의 강화, 지방자치의 활성 화, 민주주의교육의 강화 등과 같은 것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부작용을 낳거 나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하였을 뿐 민주주의 본래의 정신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서구 복지국가는 계급간의 화해에 일조했지만 국가권력의 확대와 관료제의 경직성을 초래하였고, 신자유주의는 경 쟁과 효율성과 같은 시장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자유를 방해하거나 축소시키고 있 다.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국가에 의한) 민주주의의 교육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강화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효과만 발휘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발현하고 그 원시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늘날 시민사회와 NGO 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능동사회(active society), 열린사회(open society), 사회경제 (social economy), 사회적 구상(social design), 제3자정부(the third-party government), 생태주 의(ecology), 결사체민주주의(associational democracy),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cracy)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이들의 개념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① 능동사회는 사회구성원이 개인적 자율성을 가지고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고 시민사회가 국가권력을 견제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사회체제 이다. 여기서 국가는 구성원의 요구와 대외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적응한다(박상필, 2001a). ② 열린사회는 관용과 다양성에 기초하여 다양한 행위자가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에 참 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공유한다. 여기서 객관적 지식은 상호주관적인 것이며 전체주의사 회가 바로 적이다(Popper, 1999a; 1999b). ③ 사회경제는 사회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각종 자발적 결사체가 단 독으로 혹은 정부와 연계하여 자원봉사활동, 참여와 결속, 자유로운 조직과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 라 사회적 약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실업자를 흡수한다(Bruyn, 1977; Jeantet, 1986). ④ 사회적 구상은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시민참여와 상호주관적인 관계를 통 하여 권력을 분화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외부환경에 개방적이고 아이디어를 서 로 유통하며 조직학습이 활발하다(Jun, 1995). ⑤ 제3자정부는 연방정부, 주-지방정부, 비영리단체, 기업 등이 권위와 책임을 공유하 여 각종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원적 복지사회 시스템이다. 여기서 비영리단체는 사회문제를 해 결하는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한다(Salamon, 1995). ⑥ 생태주의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유기체적, 전체적 사고에 근거하여 국가중심 의 성장주의를 지양하고 지구상의 생명체와 미래세대의 권리를 고려하는 것이다. 사회체계적으로 는 권력의 분산, 다양성, 협동, 참여 등을 중시한다(Lipiet, 2002; Sterling, 1992). ⑦ 결사체민주주의는 권력의 분화, 자원주의의 강화, 참여의 활성화에 근거하여 시민 사회의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가 자치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형태이다(Hirst, 1993; 임혁백, 1995). ⑧ 참여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관 련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효과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참여의 적극화를 통하여 인간발전을 장려하고 정치적 효용성을 높이려는 것이다(Pateman, 1970; 박상필, 2002a). 이상에서 간단하게 설명한 정치적 제도나 기획은 민주주의를 급진화하여 그 원시성을 회복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 제도는 시민참여를 활성화하여 권력의 정당 성과 자기결정원리를 강화한다. 정치가 공적 영역의 의사결정과정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원 배분을 둘러싼 모든 갈등과 협력으로 확대된다. 국가의 중심성과 국가권력의 절대성이 부정되고 권력의 분화와 다원화를 주장한다. 부와 권력의 평등과 참여의 균등한 기회를 강조한다. 그리고 거 버넌스의 확대와 사회자본의 발생을 통한 이기주의의 완화와 시민성의 강화를 요구한다. 자유주의 가 강조한 재산권이나 마르크스주의가 강조한 노동보다는 인권을 중시하고 학습하는 사회를 가능 케 한다. 이러한 새로운 기획은 오늘날 시민사회에서 자율적으로 분출하여 국가의 경계를 넘어 공 동의 참여와 연대를 통하여 공공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NGO의 존재와 밀접한 관련 을 가지고 있다. V. NGO가 갖는 함의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자본주의,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초국적기 업의 영향이 강한 지구화가 보편적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 하에서 실시 되어 온 권력의 집중, 위계적 관료제, 명령과 통제, 기술의 지배, 폐쇄적 의사결정, 정치적 무관심, 시장주의의 확대 등과 같은 방식으로는 민주주의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인간 의 완전한 자아실현을 위하여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 하여 NGO의 존재와 NGO가 지도하는 시민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NGO의 존재는 근대사회의 도구적 합리성의 범주를 넘는 다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모색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아래에서 는 NGO가 민주주의를 재구성하여 급진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나누 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다원적 가치의 보존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곧 다원주의가 아니고, 정당의 다당제를 보장한다고 해서 다원적 사회가 구축되는 것도 아니다(손호철, 1992). 다원적 사회는 국가권력이 분화되고 다양한 조직이 발생하 여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경쟁하는 사회이다. 다원적 사회는 각종 집단이 자기정정의 기제없이 특수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집단간의 갈등이 상호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을 긋거나, 거대집단이 영 향력을 독차지하면 지속하기 어렵다. NGO는 다양한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가치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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