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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열하일기를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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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경실련 작성일12-07-05 12:34 조회5,4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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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를 다시 읽으며...

                                                    **  김 대 래 [부산경실련 상임대표/신라대 경제학과] **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꼭 420년이 되는 해이다. 60갑자가 일곱 번 바뀌었다고 해서 임진란 7주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16세기 말 국제적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각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피해는 물론 조선이 가장 컸지만,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쇠하고 청나라가 일어서는 명청 교체의 큰 변화가 있었다.

연암을 사로잡은 청나라 주거문화

전통적으로 명나라와 가까웠던 조선은 청나라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일부 조선의 유학자들은 청을 대신하여 명나라의 성리학을 조선이 계승해야 한다는 포부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미개한 만주족이 세운 나라라고 멀리했던 청나라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조선이었다. 풍부한 물산에 더하여 서양의 문물을 우리보다 먼저 접하였던 청나라의 발전은 조선보다 확실히 앞서 있었다.

이런 사실은 조선후기 사신들이 중국에 다녀오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글과 말로 전한 중국의 발전상은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북학이었다. 중국을 다녀오면서 나왔던 연행록 가운데 단연 으뜸은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다. 박지원은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대단한 인기작가였는데, 비록 출간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연암의 식견과 문체는 굉장한 파격이어서 큰 관심을 끌었다.

박지원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 막 들어갈 무렵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중국 민간인들이 사는 집이었다. 당시 조선 집들은 나무와 흙으로 지은 작은 초가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집들은 모두 벽돌로 지어졌는데, 하나같이 크고 반듯했다. 집을 짓는 재료로 벽돌을 쓰는 것에 연암은 놀랐고, 이후 벽돌집은 줄곧 연암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중국 집들을 보면서 박지원은 한국 집이 무너지기 쉽고 불에 타기 쉽다는 것을 떠올리고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집을 짓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무엇일까 라고 연암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기술의 차이이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문화의 차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그 우아한 곡선미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서민들이 살았던 집들은 작고 부실했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에 대한 관념은 특이하다. 아름답고 견고하게 짓는다는 개념은 강하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집 짓는 것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성냥갑을 닮은 네모난 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전통가옥을 보존하는 개념은 미약했다. 새마을운동 시기에 초가지붕을 벗길 때에도 거의 아무런 저항도 주저함도 없었다. 이런 것이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주거문화에 대한 우리의 독특한 감각과 유산이 새로운 시험을 맞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관통하는 도시개발의 흐름은 이른바 재생이다. 과거에 있었던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보존하면서 현대화된 모습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근대화를 선도했던 과거의 세계 공업도시들이 오늘날 새로이 리모델링 되는 성공사례들이 자주 발표되고 있다.

서구에서 나와 새 조류로 자리잡은 도시재생은 부산에서도 도시발전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고 있다. 부산에 산재해 있는 좁은 골목과 계단, 그리고 가파른 길 위의 작은 집들은 역사의 아픔과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불편한 공간들이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삶의 공간에서 밀려났던 이 공간들도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면 훌륭한 재생 자원이 될 수 있다.

창조적 재생 있어야 도시 발전

그렇지만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좀 더 창의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아름답고 살고 싶은 집들이 아니라 그냥 버려진 불편한 집들이 대부분인 주택은 보다 현대적인 감각의 창의적인 재생을 필요로 한다. 도시재생의 목적은 구경 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떠났던 사람들이 살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열하일기가 나온 지 232년이다. 박지원이 환생한다면 우선 무엇보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덮어버린 아파트에 놀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주거문화에 더욱 놀랄 것이다. 휴일에 오랜만에 나가 본 온천천도 재생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옛 물길과 물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풀을 뽑아내고 돌을 쌓는 것이 마치 사방공사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문화를 이야기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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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7월 4일 자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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