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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이상한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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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기철 작성일08-03-25 10:28 조회8,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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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상한 시장경제

                              **  권 기 철 [부산경실련 지역경제위원장/ 부산외대 비즈니스경제학과] **

  이명박 정부가 내건 5대 국정지표 중에 '활기찬 시장경제'라는 것이 있다.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지금 이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규제 개혁인 것 같다. 지식경제부가 대통령에게 보고
한 것을 보면 전봇대로 상징되는 규제를 몽땅 뽑아버릴 기세이다. 수도권 규제와 같은 입지 규제
를 비롯해 환경, 노사관계 등 기업 경영을 방해하는 규제들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고쳐서 기
업 환경을 2012년까지 세계 10위권으로 개선하겠다고 한다.

  경제문제와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교육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본고사 부활 불가, 고교등
급제 불가, 기여입학제 금지로 이루어진 소위 3불정책을 폐기하겠다는 암시가 나온 것은 머잖은
옛날, 인수위 시절의 일이다. 심지어 규제와 간섭의 화신인 교육부를 없애겠다는 얘기까지 나온 적
이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규제를 거의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한다는 것이겠다.

  규제 개혁의 분위기가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이것을 기화로 오버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른이 일
하다 과로해서 죽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학생들이 공부하다 과로해서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는 명언을 설파하면서 학원교습 24시간 허용조례를 내놓은 학원장 출신의 어떤 서울시의
회 의원을 보라. 규제 철폐가 지고의 가치가 되고, 영어몰입교육이다 전국 수준의 일제고사다 해
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물실호기라, 이때를 놓칠소냐, 학원에 가해지던 영업 규제도 이참
에 풀어보자 이거였다. 규제 마녀사냥이 낳은 해프닝이다.

  근데 좀 이상하다. 이 정부는 규제를 몽땅 없애겠다면서도, 규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정책을 동시
에 추구하고 있다. 우선 경제정책의 조타수 역할을 맡은 기획재정부의 출범부터가 규제 강화의 철
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과거 정부의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서 출범함으로
써 공룡조직이 되었다. 시장의 자율에 경제운용을 맡기겠다면서, 유신시대의 경제기획원과 같은
초절정 거대강력조직을 탄생시킬 수는 없다. 시장경제가 가진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분업과 전문화
로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인데, 재정 기획 예산을 통괄하는 부서라는 발상은 분업의 원리는 물론,
민주주의 원리에도 안 맞다.

  게다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소위 환율주권론이라고 해서 경제성장을 위해서
라면 외환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서 환율 인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역시 통제주의적 발
상이다. 지금 제2의 환란이라고까지 불리는 대미달러 환율의 나홀로 급등은 바로 장관의 정책방
향 제시에 세계외환시장의 경제주체들, 즉 투기꾼들이 반응한 데도 원인이 있다.

  기획재정부는 정권 출범과 함께 해외에서 밀어닥치고 있는 물가 쓰나미에도 규제 강화로 맞서
고 있다. 이달 초에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서민생활안정대책은 단속과 감시를 기본철학으로 한다.
철근과 밀가루 같은 해외원자재 의존 제품은 매점매석 금지, 학원 수강료 같은 서비스 가격은 수강
료 고시, 자동차 기름값은 가격 공개로 가격 인상을 저지한다. 이를 위해 지자체, 국세청, 소비자단
체가 나서서 합동단속반을 꾸려 활동한단다. 유신시대와 전두환 시대에 흔히 쓰던 물가통제방식이
다. 대통령은 50개 생활필수품을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서 대
통령의 교시 하나로 물가가 잡힌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아주 순진하다.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시장경제를 시장경제답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 수요와 공급
의 사정을 반영한 가격의 자유로운 움직임이라고 씌어 있다. 그래서 경제학의 시조인 아담 스미스
는 가격의 수급 조절 메커니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신비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장상황을
반영하여 물가가 올라간다고 그것을 때려잡기 위해 '보이는 손'을 가동한다? 그 결말은 70, 80년대
의 경험이 말해준다. 각종 물가들이 단속이 무서워 인상요인을 즉각 반영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키
우고 있다가, 어느 날 '가격 합리화'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폭등하는 것이다.

  정권의 임기는 5년이지만, 국민은 계속 살아야 한다. 물가 누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터뜨리
지 말고 그때 그때 반영되도록 내버려두라. 시장의 구조적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을 억지로 막는
건, 암 환자에게 진통제 먹이는 것과 같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고통을 감내하자고 솔직히 고백하
고, 고통을 정부도 분담하겠다고 약속하라. 정부 지출을 줄여서 서민들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고,
과도한 사교육비, 과도한 주거비 지출을 줄일 방안을 마련하라. 그게 시장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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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9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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