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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망각의 도시, 추억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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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기철 작성일07-02-03 16:29 조회5,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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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망각의 도시, 추억의 경제학

                  **  권 기 철 [부산경실련 지역경제위원장/ 부산외대 비즈니스경제학과]
 
 
  서면 제일제당 자리의 백설관이 헐렸다고 한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제조공장인 제일제당을 지어 경영하면서 집무실로 사용했던 곳이다. 부산의 산업화
는 이미 일제시대 때부터 시작됐지만,오늘날의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이 1947년 연지동에서
창업하고,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이 1953년 서면에서 창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
작했다. 당시부터 1970년대 정도까지 서면 일대는 거대한 제조업 집적지였다. 섬유공장과 제분공
장 등이 서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공구상가는 당시 영화의 흔적이다.

  19세기는 혁명의 시대이고 20세기는 자본의 시대라고 한다. 경제사학자 홉스봄의 표현이다. 먼
훗날 "부산의 20세기는 어땠어요?"라고 어린이가 묻는다면 20세기를 살았던 할아버지는 "자본의
시대였지"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 어린이가 다시 "그러면 부산에는 어떤 유적이 그
시대를 나타내나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할아버지는 "그런 건 없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자
본의 흔적은 공장이나 기계일 텐데,20세기를 살아온 우리가 그런 것을 유적으로 남겨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설관은 아깝다. 오늘날,그 공과를 떠나서,우리나라 최대의 재벌을 탄생시킨 모
태 역할을 했던 건물이라면 오히려 억만금을 주고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었다. 삼성그룹이 왜 이 건
물의 철거를 허락했는지 알 수 없지만,삼성의 판단은 그들의 몫이고,부산시가 나서서 그 보존을 위
해 애썼어야 했다. 그것은 이 건물이 부산의 20세기를 증거하고 있어서 그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돈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 부산이 그렇듯이,공업으로 성장한 도시에서 공업이 떠나버리고 나면 공업 외에 도시를 먹여
살릴 만한 대체산업을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산업으로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거론
하고,구체적으로 컨벤션·금융 등과 함께 관광산업을 떠올린다.

  말이 쉬워 관광산업이지 관광객이 그냥 모여드는 것은 아니다. 볼거리,놀거리,먹을거리가 있어
야 한다. 부산은 해운대와 태종대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이 정
도 '천혜'의 자원은 딴 나라에도 대부분 다 있다. 우리나라에서 귀해서 그렇지 세계적으로 보면 그
저 그런 정도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관광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으며,또 보여주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부산
의 '이야기'이다. 관광객들은 도시를 관광 대상으로 할 때에는 그 도시가 다른 도시와 다른 점에 대
해 궁금해 한다. 그 도시만이 갖고 있는 것, 그 도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부산의 역사
와 부산의 문화,부산사람들의 독특한 사는 모습과 같은 것이 관심거리이다.

  백설관 같은 것은 부산의 이야기를 짜나가는 데 좋은 재료로 쓰일 수 있었다. 자본의 시대 20세
기 부산 산업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헐려버
린 것을 아쉬워하면 뭐하겠는가마는,오늘만을 근근이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라 추억할 과거도 가지
고 있는 우리라는 것을 후손들과 손님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보존하고 다듬어나가는 우리
의 마음가짐이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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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 1 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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